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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아래사람들
앙상블은 음악이나 연극 등에서 전체적인 통일이나 조화를 가르키는 프랑스말이지만, 뮤지컬에서는 흔히 주·조연 아닌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이른다. 이들은 공연 중에 주·조연들이 무대에 나와서 노래하거나 춤을 출 때 그들의 뒤나 옆에서 같이 춤추고, 코러스를 넣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활력을 불러넣는 역할을 한다. 17일 저녁 충무아트홀 2층 연습실 문을 열자 16명의 뮤지컬 배우들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가 훅 하고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오는 11월18일부터 공연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피핀>에서 마약과 섹스 등에 빠진 주인공 피핀의 환락경을 표현하는 군무를 추고 있다. 맨 앞에서 앙상블 배우들의 열정적인 춤 장면을 이끌고 있는 한 여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이지은(33)씨.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 앙상블로만 9년째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배우다. 뮤지컬계에서 춤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소문난 그는 현재 앙상블들의 군무를 이끌고 있는 ‘댄스 캡틴’이기도 하다. 동료 및 후배 배우들은 그가 “앙상블(배우)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무대에 서는 배우, 앙상블의 중요성과 역할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배우”라고 입을 모은다. “앙상블을 주연배우를 하기 위해 거쳐가는 단계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해요. 모르는 이들에게는 춤과 연기가 쉬워 보일 수 있고, 주연보다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앙상블입니다. 춤과 노래, 연기 등 3박자를 다 갖춰야만 극의 흐름을 잘 따를 수 있어요.” 그는 “앙상블이 제대로 받쳐주어야만 주연이나 다른 조연이 빛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모든 일도 그렇듯이 공연도 혼자서 잘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모니를 이뤄야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중앙대 예술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외국유학 준비를 하던 중 선배의 추천으로 에이컴의 <명성황후> 오디션에 응모해 발탁됐다. 1997년 <명성황후> 뉴욕공연과 1998년 <명성황후> 로스엔젤레스 공연을 시작으로 <페임>(1999, 2000), <싱잉 인 더 레인>(2003), <미녀와 야수>(2004), <아가씨와 건달들>(2005) 등 뮤지컬 14편에 앙상블로 출연했다. 2002년 <에브리원 세이 아이 러브 유>에서 처음 주역으로 발탁되기도 했고, 1999년 <페임> 공연 때는 조연인 램찹스 역을 잠시 맡기도 했으나 자신의 분위기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뭔가를 다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어요. 춤을 너무 좋아하고, 제일 자신있는 것이 춤이고, 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해요. 모든 것을 다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격렬한 춤이 많이 요구되는 앙상블이기 때문에 간혹 부상의 위험도 따르지만 “다른 공연보다 생동감과 열정을 표출하기 쉬운 뮤지컬의 매력” 때문에 견뎌낸다. 몇해 전 <둘리> 첫 공연에서 연습한 지 1주일만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져서 한달간 기브스 생활을 해야 했다. 또 2003년 <싱잉 인 더 레인> 때는 춤을 추다가 세트에 발이 끼어 발등이 찟어지는 바람에 꿰맨 채로 울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는 아직까지 현대무용과 재즈, 탭댄스 등 모든 춤에 자신있지만 훗날을 대비해 안무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무대는 냉정합니다. 춤을 못 추는 사람은 걷는 것조차 어색하지요. 무턱대고 주연을 맡으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춤과 노래, 연기를 다 골고루 닦은 뒤에 프로 무대에서 승부를 해야 합니다. 또 자신보다는 팀웍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앙상블로 무대를 지켜온 베테랑 배우의 충고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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