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과 스밈
지난달 국내 미술판에서는 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 두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관광 명소인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통로계단 그림을 주민들이 잇따라 훼손하는가 하면, 젊은 작가 이완씨는 명품브랜드 디올의 강남 매장 전시에 유흥가 앞에서 디올 핸드백을 맨 여자가 서있는 구도의 사진 ‘한국여자’를 출품했다가 여성비하라는 온라인 논란에 휩싸이고 작품이 내려지는 수모를 당했다. 경매·화랑시장과 미술관 전시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국내 미술판의 현실에서 두 사건은 쟁점이 되지 못한 채 뒷담화 정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술과 대중의 소통이란 측면에서 짚고 가야할 대목들이 분명히 보인다. 90년대 이후 공공미술이란 명제 아래 미술의 사회적 기능, 공공적 가치가 작가들 사이에 중요한 작업 의제로 제기돼왔고 20년 이상 도시 조형물과 마을 벽화, 거리가구, 공공 미디어영상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중과의 기본적인 교감에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두 사건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울 대학로 낙산 기슭의 이화동은 10년전부터 벽화와 조형물을 끌어들인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된 곳이다. 거리가구, 조형물, 벽화 작업들이 오랫동안 계속 설치됐고, 쇳대박물관 같은 문화시설과 주민 사이의 네트워크도 나름 충실하게 형성됐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10년간의 성과들 또한 주민들의 생활상과 여전히 괴리가 있다는게 명확해졌다. 관광객들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주민들의 집안을 주시하고 이들이 낳는 소음과 쓰레기 문제, 재개발 무산을 둘러싼 갈등에 불만이 쌓인 일부 주민들이 일탈을 감행한 것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공공예산이 들어간 계단그림을 지운 건 반달리즘이라는 비판과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사업에 참여한 미술인들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국내에 벽화와 조형물이 들어선 마을 프로젝트는 전국 200곳에 육박한다. 문화체육관광부 마을미술 프로젝트나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등 정부, 지자체별로 여러 공공미술 사업들이 10년사이 추진되어 왔지만, 주민의 삶과 조형적 완성도가 어우러진 수작들은 매우 드물다는 게 미술계 안의 주된 평가다. 사업의 공익성과 별개로 작가들이 관료들과 타협해 관광 위주의 볼거리나 환경미화 정도에 머무르는 작업들을 내놓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작업 뒤 작가들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미술작업 현장을 방치해 흉물이 된 사례들도 지방 곳곳에 많다. 사회적 미술의 본령에 맞게 작품 설치 뒤 주민들과 계속 교감하면서 새 사업을 잇따라 창출하는 ‘피드백 모델’들이 활성화된 곳들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대중이 미술을 실감한 계기는 공공미술이라기보다 사회적 투쟁 현장의 포스터나 걸개그림,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 재벌가의 편법적인 미술품 투기나 밀실거래 등에 얽힌 의혹 등이 주된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까지 한국의 제도권 미술판을 움직인 주류는 개인주의적이고 사변적이며, 독립장르로서 미술의 자의식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계통이 압도적이었다. 리얼리즘이나 커뮤니티 아트를 내세우는 사회적인 미술운동이 80년대 이래 흐름을 형성했지만, 미학적인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고 보는 미술계 주류와 평단의 외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지평론가 이영준씨는 “숱한 오진을 낳으면서도 여전히 사회적 신뢰감이 굳건한 의료계와 비교해보면 대중의 미술에 대한 신뢰는 훨씬 떨어지는 실상을 인정하고 새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1년 서울 지하철 을지로 3가역 환승로벽에 그려진 강영민·이동기 작가의 캐릭터 벽화가 숱한 민원과 훼손행위로 철거됐던 전철이 10여년뒤에도 이화동에서 되풀이된 사실을 미술인들은 고민해야한다. 상상력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작가들이 작업 동료로서 시민들의 삶과 감각을 얼마나 치열하게 주시하며 자신의 관점과 감각을 갈고 닦았는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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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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