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12 15:23
수정 : 2017.01.1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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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무대에 세월호와 위안부 등 한국사회의 쟁점이 사라진 가운데 외국작품들과 과거작품들이 많이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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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작품 20편 분석해보니…
외국작과 한국 과거작이 75%
외국인 연출자는 50%나 차지
김윤철 예술감독 재임 3년간
세월호·위안부 등 현안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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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무대에 세월호와 위안부 등 한국사회의 쟁점이 사라진 가운데 외국작품들과 과거작품들이 많이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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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위안부’ 등 공동체가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지워지고 추방되었습니다.” 지난 10일 블랙리스트에 맞서 연극인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 선언문의 일부다.
연극인들의 말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극장 국립극단 작품에서 ‘지금 여기 한국’이 사라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상반기 취임한 김윤철 예술감독 재임 동안 세월호와 ‘위안부’는 물론 한국사회의 민감한 현안을 다룬 작품은 국립극단 무대에 단 한 편도 오르지 않았다.
동시대 한국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사라진 무대엔, 셰익스피어 서거 400돌 기념공연을 비롯한 외국작품들과 함께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힘든 한국 근대작품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2016년 국립극단의 22개 공연 중 차세대 연극인 발표회와 기획초청작 <날 보러와요>를 뺀 20편을 살펴봤다. 이 중 60%인 12개가 외국 작품이었다. 여기에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가 3편이었다. 이 시리즈는 <국물 있사옵니다>를 빼면 동시대에 유효한 의미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결국 20편 중 15편이 외국과 한국의 과거 작품으로 집계된다. 그나마 소극장 판에 올라간 <고등어> 정도가 호평을 받았다. 특히 외국인 연출가가 10번이나 참여해 무려 50% 비중을 차지했다.
2016년 한국의 국립극단은 ‘지금 여기’가 아닌 ‘옛날 저기’ 극단이었다. 국립극단(national theater)은 국가(nation)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international)와 과거로 도피한 것으로 보였다.
김미도 평론가는 <한국연극> 1월호에서 김윤철 체제 국립극단의 난맥상을 종합적으로 짚었다. “공연물량은 많은데 대부분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졌고, 외국작품들이 너무 많았고, 특히 셰익스피어가 많았고, 외국인 연출들도 많았고, 심지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공연들도 있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신작 창작극이 없었고, 젊은 작가나 연출들을 기용한 공연이 절대 부족했고, 근대극 시리즈는 기획 의도가 불분명했고, 무엇보다 연극계와의 소통이 절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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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3일 임기가 끝나는 김윤철 예술감독 재임동안 국립극단은 세월호·위안부 등 한국사회 현안에 대해 외면해왔다는 지적이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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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예술감독의 임기는 다음달 3일까지다. 지난 3년간 김 감독 체제의 국립극단은 ‘시대의 정신적 거울’이라는 연극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단체이면서도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지 못했다.
임기를 겨우 20일을 남겨뒀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후임 물색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정상원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장은 11일 “아직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후임자군을 장관에게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조윤선 장관이 특검 수사를 앞둔 문체부의 어수선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화예술계는 조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기 전 퇴진해야 한다고 명토박고 있다.
연극계는 다음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지녀야 할 자질로 몇 가지를 꼽는다. 한국사회 현안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지금 여기’ 작품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젊은 연극인들이 놀 수 있는 창작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들이다.
지난해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으로 각종 연극상을 휩쓴 김재엽 연출은 “국립극단 제작비는 국민의 세금이다. 당연히 현재 국민 삶에 관심을 가져왔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립극장, 국립극단 등의 기관장, 위원, 예술감독이거나 이를 역임한 연극인은 ‘청와대-문화부’에서 내려온 블랙리스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공개적인 답변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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