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16 16:12
수정 : 2017.01.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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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손님들>은 소년이 부모를 죽이기까지 내면의 트라우마 동선을 되짚어가는 ‘심리적 부검’ 과정이며, 소년이 부모와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쳐가는 ‘심리 치료’ 과정이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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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손님들’ 리뷰
부모를 살해한 소년 ‘심리적 부검’
한편으론 소년의 ‘심리치료’ 과정
길고양이, 부서진 동상, 무덤 주인…
비루한 존재들의 가장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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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손님들>은 소년이 부모를 죽이기까지 내면의 트라우마 동선을 되짚어가는 ‘심리적 부검’ 과정이며, 소년이 부모와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쳐가는 ‘심리 치료’ 과정이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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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됐을 때 이미 끝나 있었다. 막이 오르면 벌써 소년이 부모를 죽이고 난 뒤다. 왜 죽였을까? 그리고 죽은 부모를 왜 날마다 다시 죽일까? 그러면서 왜 또 날마다 죽은 부모를 위해 아침밥을 차리고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살가운 등교인사를 할까?
소년은 “어제도 실패했어. 오늘은 정말 잘해야 해.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날 믿어. 꼭 (부모가) 제대로 살게 해줄 테니까”라고 속다짐을 한다. 그러므로 연극은 소년이 부모를 죽이기까지 내면의 트라우마 동선을 되짚어가는 ‘심리적 부검’ 과정이다. 그리고 또 연극은 소년이 부모와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쳐가는 ‘심리 치료’ 과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선불교의 ‘살부살조’(殺佛殺祖)가 거짓 관념을 부정하는 ‘구도적 살인’이라면, 소년의 ‘살부살모’는 찢긴 가족관계를 회복하고픈 ‘구원적 살인’이다.
연극 <손님들>(12~15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은 2000년 스무 살 청년이 부모를 토막살인한 실제 사건이 배경이다. 주검을 검은 비밀 봉투에 나눠 새벽마다 버리고 다닌 청년의 고독과 절망은 무엇일까? 고연옥 작가가 희곡을 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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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에서 ‘손님들’로 등장하는 길고양이, 부서진 동상, 무덤의 주인은 하찮은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상처받은 소년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들이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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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제복의 군인 아버지, 출세를 꿈꾸다 실패한 자신의 욕망을 소년에게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개처럼 팼다. 진홍빛 벨벳 드레스의 어머니, 대학을 포기하고 결혼한 남편의 실패를 아들의 성공으로 보상받으려 소년을 모질게 학대했다. 욕망의 성채는 높아갔고, 그럴수록 고립의 해자는 깊어갔다.
자라기를 멈추고 세상에서 고립된 어른은 어른답지 못했다. 그럴수록 소년은 한껏 더 어른스러워져야만 했다. 안방 죽은 어머니를 향해서 “안 먹을 거면 냉장고에 넣었어야지!”, 건넌방 죽은 아버지를 향해서 “아직도 자? 지금 몇 신줄 알아?”, 건넌방 문을 열고는 “아, 냄새. 좀 씻어라. 옆에 아무도 안 오겠다. 일어나라고!”….
흥미로운 점은 이 집에 ‘손님들’로 초대된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들. 버려진 길고양이 ‘3단지’와 초등학교의 부서진 조각상 ‘오뎅’, 그리고 뒷산 무너진 무덤의 주인 ‘동수 아저씨’다.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소년에게 이들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과 위안을 준다. 다소 기괴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의 이들이 펼치는 한바탕 춤은 이 연극을 보는 또 다른 묘미다. 요컨대, 이 작품의 미덕은 기괴한 존재들이 꿈꾸는 기괴하지 않은 세상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소년이 “차라리 당신(부모)들이 손님이었다면 보내버리면 될 텐데…”라고 말할 때다. 어찌할 수 없는 부모-자식 관계의 악연의 끈을 끊어버리고 싶은 소년의 고민이 응축된 표현이다. 소년은 좋아하는 소녀와 만날 때도 부모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집중할 수 없다.
김정 연출은 ‘존속살인’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주제를 소년의 밝은 미소로 풀어냈다. 아직 새내기급 연출로서는 놀라운 표현력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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