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제일치…’전에 출품한 조안나 하지토마스와 칼릴 조지의 프로젝트 <방화벽이 있는 사진가의 이야기>. 압달라 파라란 사진가가 내전의 충격으로 착란상태에 빠져 자신의 일부 사진엽서 작업을 불태운 잔해를 모아 만들었다.
|
레바논·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출신 미술인 작품 국내 첫 소개
팔레스타인, 레바논,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가장 극심한 민족 분쟁의 땅이다. 외신으로 쉴새 없이 전해지는 이들 지역의 전투와 유혈충돌 소식은 이곳 사람들이 그만큼 죽음과 이산의 고통을 일상처럼 겪으며 살아간다는 사실 또한 일깨운다. 이런 지정학적 여건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세 지역 출신 현대미술인들의 작업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마침 서울의 두 독립 전시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로 앙숙인 이들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을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 마당이 차려졌다. 대안공간 풀과 인사미술공간에서 같이 열리는 ‘시제일치: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메시지’전(16~내년 1월11일·02-760-4721)과 서울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에 마련된 한국과 이스라엘 동시대 미술교류전 ‘인간과 장소의 사이’(20일~내년1월12일·02-3142-1695)다. 레바논-팔레스타인작가들 사진·단편영화등 미디어 작업
분쟁 참상 고발 메시지들 눈길
이스라엘 작가·비평가 10명은 전통적 감수성 현대언어로 표현 ‘시제일치…’전은 75년부터 15년간 장기 내전을 치렀던 레바논과 이곳에 사는 잘랄 투픽, 아크랍 자타리, 아자 엘 하산 등 팔레스타인 작가 10여 명의 출품작들을 보여준다. 출품작들 가운데 첨단 영상과 단편 영화, 사진 등의 미디어 작업들이 많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전통적인 회화, 조각을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8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은 영상을 통해 외세에 압박받고 개인적 정체성을 통제당해온 자신들의 상황을 풀어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다큐적 방식으로 자기들의 민족, 성 정체성, 그리고 압박받는 정치 현실에 대한 은유적인 메시지들을 담은 것들이 주종이다. 내전의 기억에 얽혀 죽은 형제의 서정적인 노래 녹음 육성을 들려주거나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전하는 고발적 메시지의 작품들이 우선 눈에 띈다. 특히 압달라 파라란 사진가가 내전의 충격으로 착란 상태에 빠져 자신이 찍은 베이루트 시가의 엽서사진을 불에 태운 잔해들을 재구성한 조안나 하지 토마스와 칼릴 조지의 프로젝트 사진들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
‘인간과…’전에 출품한 이스라엘 작가 로미 아키튜브의 영상물
|
하지만 집단성이 강한 레바논 사회에서 개인주의나 성 정체성, 죽음의 실존적 의미를 고찰하는 작업들도 많다. 시위군중 속의 개인을 주목하며 추락하는 꿈과 죽음에 접근한 라비 무루에의 영상이나 신문종이 하단에 잠자는 사람의 사진상을 인쇄해 탈신체성의 의미를 말하는 빌랄 크바이츠 & 왈리드 사덱의 작업 등이 주목된다. “전쟁과 살육은 항상 삶 곁에 있다. 숱한 죽음을 목격하는 상황에서 삶에 대한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작업하기 힘들다”는 영상 작가 잘랄 투픽의 말은 레바논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장중한 해설처럼 들린다. 대안공간 풀에서는 1월11일까지 라비 무루에, 잘랄 투픽 등 작가 8명의 사진, 영상이 전시되며, 인사미술공간에서는 1월8일까지 작가 10여명의 단편영화, 싱글 비디오물 등이 상영된다. ‘인간과…’는 유대교와 성서에 바탕해 풍부한 문학적 전통을 지닌 이스라엘 작가와 비평가 10명이 자신들의 전통적 감수성을 어떻게 현대적 언어로 표현해내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여기에 한국 현대작가 10명과 비교 전시를 통해 중근동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확인하게 한다. 이들 또한 레바논 작가들처럼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비슷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으로 스스로를 설정하고 영적이고 문학적 토양을 지닌 히브리적 문화를 현대적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유난하다. 한국인 도우미가 이스라엘 미술관에서 퍼포먼스한 이색 작업을 영상으로 담은 로미 아키튜브, 동양적 배경의 그림에 잔혹한 응급처치 도해도를 넣은 벤론 아야의 그림, 미묘한 빛이 어우러진 리브네 오리트의 아름다운 정물 드로잉 등에서 신비적이면서도 경계인적 시각을 지닌 이들의 내면을 살펴보게 된다. 한국작가로는 장영혜, 홍영인, 유승호, 서현석씨 등 10명이 출품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