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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살아있는 전설’ 유리 그리고로비치(78·오른쪽)가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안무를 위해 20일 서울에 왔다. 왼쪽은 이번 공연에서 주역으로 출연하는 볼쇼이 발레단의 니나 캅초바. 사진 국립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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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다! 호두까기 인형, 할아버지 안무가 성탄 선물주시네 “한국 발레 에너지가 넘칩니다”
발레의 ‘살아있는 전설’ 유리 그리고로비치(78)가 서울에 왔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23~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안무를 맡았다. “제가 어릴 때 발레리노로서 처음으로 출연했던 작품이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춤을 추다가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먼저 먹으려고 애들끼리 경쟁이 치열했던 생각이 납니다. 애틋한 기억이에요.” 지난 2000년 국립발레단은 유리가 안무한 <호두…>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유리의 방한은 그때 이후 처음이다. 2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팔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요즘엔 러시아 남부의 크라스노다르라는 곳에서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단원이 한 100명쯤 되지요. 내년 4월에는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년을 맞아 볼쇼이극장에서 <황금시대>를 올릴 겁니다. <황금시대>는 그가 남긴 3개의 발레곡 가운데 가장 처음 쓴 것이지요.” 그에게는 ‘20세기 발레 영웅’ ‘안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64년 서른일곱살의 젊은 나이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된 그는 이후 33년 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오늘의 볼쇼이를 만든 인물이다. 사실 그가 취임하기 전의 볼쇼이는 예술적인 면에서 마린스키(키로프) 발레단의 아류라는 평을 받았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안무작인 <석화> 이후 <사랑의 전설> <스파르타쿠스> <이반대제> <황금시대> 등은 볼쇼이의 대표작이 됐고, 그의 이름은 볼쇼이와 동격이 됐다. 특히 웅장한 군무가 압권인 <스파르타쿠스>는 기존 공연에서 실패작으로 판명난 작품을 재해석을 통해 되살려놓은 뛰어난 명작으로 꼽힌다. 보리스 옐친이 집권한 뒤 불어닥친 문화개혁 바람으로 그가 예술감독에서 물러났을 때 많은 발레 애호가들은 아쉬움에 땅을 쳤다. 유리 없는 볼쇼이는 과거의 명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평이다. 그는 “한국의 국립발레단과 3개의 작품을 같이 했는데 너무 에너지가 넘치고 열심히 해서 굉장히 큰 기쁨을 느꼈다”며 “공교롭게도 내 작품이 공연된 뒤 한국 발레가 급성장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호두…>에는 러시아 무용수 2명이 주역으로 출연한다. 지난 10월 볼쇼이 발레단의 내한 공연에서 <스파르타쿠스>의 프리기야로 나왔던 니나 캅초바가 마리 역을, 역시 볼쇼이 발레단원으로 러시아 공훈예술가인 드미트리 구다노프가 왕자 역을 맡는다. 니나는 “여러 안무가의 <호두…>를 봤지만 유리의 작품이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가장 가까운 환상적인 안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두…>는 조그만 소녀가 성장해 자신의 남자를 찾아가는 동화 같은 작품이에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어른과 어린이 모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유리 그리고로비치)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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