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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천년 전에 실제로 있었다. 고모부가 왕이며 고모 3명이 왕비출신이고, 할아버지는 최고의 권력을 쥐었던 실력자 이자연이었다. 권력실세 이자겸과도 사촌지간인 그의 집안은 법상종(“사람은 누구나 성불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문벌귀족을 대변한 불교의 한 종파)을 소유하다시피 할 정도로 권력과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대 최고 집안출신이지만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기인처럼 살다간 그가 바로 청평거사라 불리었던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다.
봄내(강원도 春川)는 이름 그대로 봄이 되어야 강다운 강들로 둘러 싸인다. 북녘의 금강산과 남녘의 설악산에 겨우내 얼었던 눈이 봄 햇살에 녹아, 봄내에서 합쳐질 즈음 비로소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방 약 50km에 이르는 분지로 이루어진 춘천을 이중환 (택지리의 저자)은 가장 살기 좋은 고장 중 하나로 꼽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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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중심으로 북쪽에 나란히 용화산과 오봉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데, 천년 전 그 오봉산에 부인과 사별한 젊은 이자현이 숨어든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중창한 사찰 주변을 자신의 수련도장이자 기도처로 만들고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현실정치와는 일정한 선을 긋고, 불교교리 연구와 참선으로 한 생을 보냈다. 역설적이지만 지탄의 대상이었던 그의 집안에 그나마 이자현이 있어 다행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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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산이라 불리었던 산간 계곡의 사찰은 한눈으로 보기에도 도적들이 숨어들기 좋을 법한 곳인데, 자현이 들어와 조용해지고 평정되었다 하여 보우국사가 청평사(淸平寺)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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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엔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너무나 유명해졌다. 오랫만에 찾은 그곳은 여전히 손잡은 쌍쌍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경춘선을 타고 직행버스로 갈아탄 후,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도착해, 계곡을 낀 오솔길을 한동안 걸어야 도착하는 그 곳은 사랑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인 것이다. 분명 이자현의 따스한 사랑얘기가 넘실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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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에 인공댐을 만들듯 청평사 일대로 인공의 손길이 많이 닿았지만, 분위기 만큼은 여전히 좋았다. 예전에 이자연이 곡식을 빻아 먹었던 디딜방아가 사라져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영지가 훼손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족했다. 절 좌우와 뒷편으로 조성된 이자현의 손길을 더듬어 보려는 욕심은 뒷날로 미루고, 배시간이 끊겼다 하여 서둘러 하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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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정상급이라고 한다. 쉽게 만나 사소하게 헤어지는 세태속에 1000년을 두고 내려오는 이자현의 아내사랑과 청평사 상사뱀 전설은 우리에게 새삼 사랑의 의미를 되짚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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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엔 배후령 방면으로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해 짐.
* 청평사 아래 고려산장에서 숙식 가능
* 추천 맛집-http://wnetwork.hani.co.kr/gaga/view.html?blog_board=4&log_no=2341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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