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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고수동굴은 빽빽하게 우거진 종유석·석순들로 지하궁전을 떠올리게 한다. 동굴 중간지점에 있는 이른바 중만물상의 일부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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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30도 넘는 불볕더위 동굴 안은 사철 15도 서늘
훼손 적어 태고 신비 간직 개방된 석회암 동굴 중 으뜸
세월의 깊이와 두께를 실감해 보는 시간여행. 물과 시간이 만나 수만년을 사랑하며 다투며 빚어낸 형상들을 한눈에 둘러보는 동굴여행이다. 찰나의 즐거움과 힘겨움의 되풀이에 지친 몸과 마음은 잠시나마 경건해지고 서늘해지고 오싹해진다.
국내의 자연동굴은 세 부류로 나뉜다. 바닷가에서 풍파에 씻기고 파여 형성된 해식동굴과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용암 동굴, 석회암 지층에서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이뤄진 석회암 동굴이다. 석회암 굴은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환선굴·관음굴 등 삼척 대이리의 동굴 무리와, 영월의 고씨 동굴, 울진의 성류굴, 그리고 단양의 고수 동굴·천동 동굴·노동 동굴 등 동굴 무리가 여기에 속한다. 현재 석회암 동굴 중 일반에 개방된 곳은 10개다. 제주도의 만장굴·김녕사굴 등은 용암 동굴이다.
석회암 동굴 가운데 국내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은 어딜까? 전문가들은, 훼손을 우려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삼척의 관음굴을 첫손에 꼽는다. 한국 동굴환경학회 탐험대장 엄경섭(고수동굴 관리주임)씨는 “관음굴은 화려한 경관에 압도되지 않는 이가 없는, 세계적인 희귀 동굴”이라며 “길이 보전해야 할 이 땅의 자연유산”이라고 말했다. 삼척 엑스포타운에서 매일 관음굴 비경을 소개하는 아이맥스 영화를 상영한다.
개방된 곳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곳이 바로 충북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의 고수 동굴이다. 소백산 줄기의 하나인 고수봉 자락, 해발 160m 지점에 형성된 전체 길이 5.4㎞의 굴이다. 평균 높이 5m, 가장 높은 곳은 70여 m에 이른다. 5억4000만년의 연륜을 지닌 석회암지대에 15만년 전에 형성된 동굴로, 1973년 발견돼 76년 천연기념물 256호로 지정됐다. 발견 당시 굴 들머리에선 타제석기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1.7㎞ 정도가 개방돼 있다.
흔히 동굴 하면 수억년의 세월을 들먹이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 석회암층 자체는 4억~5억년 전의 지층이지만, 동굴이 형성된 것은 불과 15만~20만년 전이기 때문이다. 10만년도 엄청난 세월이다. 종유석과 석순은 대략 1년에 0.1~2㎜ 정도씩 ‘자라난다’고 한다. 1년에 1㎜씩 자란다고 가정할 때 1만년이면 10m에 이르고, 10만년이면 무려 100m짜리의 유석·석순이 자라나는 세월이다.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석순은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려, 오랜 세월 침전물이 쌓이면서 굳어져 형성된다. 천장에 매달린 것을 유석(종유석), 바닥에서 솟아오른 것을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이룬 기둥을 석주라고 부른다.
고수 동굴의 진가는 덜 훼손된 동굴 내부의 화려한 경관에서 나온다. 다른 지역의 이름난 동굴들이 개발과정에서 또는 방문객에 의해 상당부분이 파괴된데 비해, 고수 동굴은 본디 경관이 눈부신 데다 훼손이 적어 태고의 신비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 또 일부 동굴이 현란한 색조명으로 경관을 망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단일 백열등 조명을 써서 있는 그대로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것도 장점이다.
길이 수십m의 아름드리 종유석과 석순들, 동굴 벽을 장식하고 있는 폭포수처럼 쏟아내리는 형상의 커튼형 유석, 지하수의 흐름이 빚은 무수한 용식공들, 온갖 형상의 크고작은 종유석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관람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입을 다물지 못한 건 종유석들 중에도 있다. 사자 머리같기도 하고, 거대한 뱀의 머리같기도 한 유석이 천장에서 벋어내린 수많은 유석들 사이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벌린 입엔 작은 유석들이 이빨처럼 돋아나 있어 포효하는 맹수의 입을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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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천장에서 수시로 볼 수 있는, 한창 자라고 있는 종유석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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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동굴 내부엔 물이 흐르고 맺히고 떨어져 내리며 숱한 유석과 석순들이 활발하게 자라고 있다. 경관마다 도담삼봉이니, 독수리 바위니, 창현궁이니, 개선문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오히려 비경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다. 굳이 말한다면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이른바 중만물상과 상만물상 부근, 사자바위 부근, 출구 가까이의 천당성벽 부근 등이다. 더위를 까맣게 잊은 채 좁은 철계단을 따라 ‘지하 궁전’을 탐색하다 보면, 한 시간 가량이 금새 지나간다. 어느 순간, 서늘하고 쾌적했던 기운이 가시고 공기가 축축해진다. 안경이나 사진기 렌즈에 김이 서리기 시작하면, 동굴 여행이 마무리돼가고 있다는 신호다. 흐린 조명등 둘레에 넘실대던 어둠은 흩어지고, 멀리서 새로운 구멍 하나가 반짝인다. 어둠 밖으로 열린 구멍, 빛의 세상이다. 사철 섭씨 14~15도를 유지하는 동굴 안에는 화석곤충인 고수갈르와 벌레를 비롯해, 박쥐·딱정벌레·장님굴새우·뿔띠로래기 등 28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동굴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비좁은 바위틈이 있으나, 고무판을 붙여놓아 헬멧은 쓰지 않아도 된다. 동굴 관람은 관람객이 많은 한여름엔 두 코스로 나누어 개방한다. 평소엔 오전 9시~오후 5시 개방. 8월 한달간은 입장 마감시간을 저녁 7시20분까지로 늦춘다. 관람시간 1시간. 관람료 어른 4000원, 어린이 1500원. 주차료 2000원. 고수동굴 관리사무소 (043)422-3072. 단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막바지 피서객 기다리는 ‘동굴천국’ 환선굴·고씨동굴·천곡동굴·성류굴 등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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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석회암이 15만년 동안 빚어낸 ‘지하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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