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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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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thrill이란 ‘사람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것’이다. 『스릴의 탄생』에 실린 작품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직설적 폭력 묘사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독자에게 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괴담怪談이 번성한 일본 문화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구의 소설 형식이 결합되어 대단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퍼블릭 도메인 아오조라분코 靑空文庫 (http://www.aozora.gr.jp)에 소개된 일본 근대소설 중 장르성이 강하고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골라 엮은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근대적 공포를 다룬 작품이나 과도기적이나마 본격 추리의 장르적 특징을 지닌 작품을 중심으로 선별했다. 「시체를 먹는 남자」는 읽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전형적인 괴담 소설이다. <신청년>1927년 4월호 수록.
「곤충도」는 짧은 분량 안에서도 일본적인 배경에 서구적 환상이 융합되어 마치 향긋한 악취와도 같은 역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유머클럽>1939년 8월호 수록.
「쇠망치」는 1인칭 시점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파멸시킨 숙부와 함께 살면서 성장해 나간다. 그의 눈앞에서 성공하고 파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가 찾아낸 ‘진정한 악마’는 과연 누구일까? <신청년> 1929년 7월호 수록.
「함정에 빠진 인간」은 정통적인 추리소설에서 벗어난 흔치 않은 작품이다. 마치 O. 헨리의 따뜻한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어둡게 만든 듯한, 그리고 결말은 훨씬 비극적인 이 작품은 ‘운명이라는 놈은 언제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어’라는 주인공의 한 마디가 인상적이다. <탐정> 1931년 5월호 수록.
「승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형의 아내. 그녀는 과연 어쩌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을까?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형제는 아내이자 과거의 연인이었던 한 여인을 두고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1928년 발표.
「가면의 비밀」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갖춘 작품이다. 여관에서 한 남자가 불에 타 숨진다. 단순 과실에 의한 사고처럼 여겨졌지만 증인이 나오면서 사건의 방향은 살인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유일한 증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 여인이며,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혈기 넘치는 신문기자는 특종을 노리며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나선다. <소설 신조> 1955년 3호 발표.
「등대귀」는 추리소설다운 논리적인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간혹 잘못된 불빛을 내보내 근처를 지나는 배들의 혼동과 좌초를 유발했던 등대에서 어느 날 불빛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같은 시각, 등대를 지키던 관리인이 커다란 바위에 깔려 시체로 발견된다. 목격자가 보고 들었다는 유령과 괴이한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일본 추리소설의 번역물이 물밀듯 밀려오는 속에서 일본 초기 전성시대의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연 요즘의 일본 추리소설들이 어떤 선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배경 속에서 성장해왔는지, 『스릴의 탄생』은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자료제공 : 시간여행 <본 기사는 한겨레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기업의 정보제공을 위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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