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28 20:40
수정 : 2011.04.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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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발언에 대한 각계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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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강화” 파장
기업들 격한 반대
정부 의지가 관건
이건희 삼성 회장 “연기금 주주권 행사 환영”
김승유하나금융 회장 “주주로서 권리 인정 당연”
이건희 삼성 회장이 28일 아침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발언에 대해 “환영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이날 오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주주로서의 권리는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 대해 “생각이 깊다. 수가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한층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국내 재벌기업과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어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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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 강화되나 재벌기업의 주주들이 주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기업 총수들은 5%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 주주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인사권을 행사해 계열사 대표이사와 임원들을 결정해왔다. 주주총회 현장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주주들보다 회장의 뜻을 중시해왔다. 순환출자 등 얽히고설킨 복잡한 지분 관계로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의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경제개혁연대 등이 소액주주들을 모아 주총 현장에 참석해온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 관계자는 “결과를 바꿀 정도는 못 되지만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과징금제 등 법과 제도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힘을 받도록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운동은 지분의 열세로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총수에 맞먹는 지분을 가진 연기금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기금이 움직일 경우 상황은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현대자동차와 에스케이(SK) 주총에서 계열사 부당 지원과 분식 회계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며 정몽구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해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더욱이 연기금의 주식보유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얻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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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지 있나 정부는 그동안 저금리, 고환율 등 재벌기업에 유리한 경제 환경을 조성해왔다. 그럼에도 재벌기업들이 동반성장 의지를 보이지 않는데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낙제점은 면했다”는 식의 평가를 받은 데 대해 큰 실망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 위원장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대기업 이익의 일정 부분을 동반성장에 쓰도록 하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건은 정부가 연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느냐 여부다. 단기적으로 기업 길들이기 차원이라면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일회성 해프닝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가 나서 기업들 손목을 비튼다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얼마든지 기업들을 견제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별로 신경을 안 쓴다”며 “공개적으로 주주의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환영한다”고 말했지만 이런 움직임이 재벌기업 총수들에게 결코 반가운 일일 수는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격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선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정부 의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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