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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화순군청(화순부군수 민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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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경제대국, 세계 예술품 시장 대국 중국
-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 관광객
- 중국과 가장 친한 고장 화순
1.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중국
지난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라섰다. 올해 초 일본 내각부는 자국의 작년 달러 환산 국내총생산(GDP)이 5조 4,742억 달러로 중국의 5조 8,786억 달러에 비해 4,044억 달러 적었다고 발표했다.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준 것은 1968년 이후 42년 만이다. 중국은 앞서 2005년 GDP 규모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점프한데 이어 2008년 독일을 따돌리고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2010년 GDP는 한국(9,862억 달러)의 약6배이며 국내 소비시장 규모도 중국이 2조 7,000억달러로 한국(5,000억 달러)보다 5.4배 정도 크다.
중국은 풍부한 성장 잠재력을 감안할 때 앞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국마저 제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는 시점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뒤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 세계 예술품 시장 1위에 등극한 중국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예술품 시장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1위에 뛰어올랐다. 지난 2007년 미국, 영국에 이어 3위로 급상승한 지 3년 만이다. 지난 3월에 홍콩의 명보(明報)가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중국의 거래액이 총 573억 위안(9조 7,971억 원)으로 60여 년간 수위를 지켜온 미국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고 프랑스 예술시장 정보업체인 ‘아트 프라이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AFP통신은 6월 24일 프랑스 경매시장위원회(CVV)보고서를 인용, 지난해 홍콩을 포함한 중국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은 전년 대비 137% 증가한 76억 유로(11조 6,370억 원)로 세계 1위라고 보도했다. 중국에선 40년 전만 해도 예술품을 거래하거나 상속하는 것조차 불법이었다. 하지만 이젠 세계 1위의 큰 예술품 시장이 됐다. 아트이코노믹스의 창업자인 클레어 맥앤드루 이코노미스트는 “1950년대 세계 예술품 거래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예술품 거래의 중심은 파리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동진하고 있다. 홍콩․마카오․대만 등을 포함한 중화권 예술품 시장 규모는 2009년 이후 두 배로 성장했다.
미국이나 유럽 부호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유명 예술품 매매 시장에 중국부호들이 뭉칫돈을 들고 나타나면서 전 세계 경매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중국인들은 중국예술가의 유명 작품을 사모으는데 엄청난 액수의 돈을 쏟아 붇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예술품 경매회사 중 하나인 소더비의 빌 루프레흐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인들은 지난해에만 자국 예술품을 매입하는데 4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전했다. 이는 소더비와 그 경쟁사 크리스티가 인상파와 근대 현대 미술 품을 판매한 금액을 합친 것보다 큰 액수다. 청나라 시절의 도자기 한점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비슷한 가격이 나올 정도다. 최근 홍콩 소더비에서 나온 14세기 명나라 도자기는 무려 2160만 달러(250억)를 찍기도 했다.
3. 관광산업의 새로운 고객으로 급부상한 중국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서 매우 중요한 국가이기도 하지만 최근 관광산업의 새로운 고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국가이다. 높은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해외여행비가 싼 데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쇼핑이 가능해 인기가 많다.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올 연말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10월 10일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은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153만8,327명이 입국해 지난해 131만4,881명 보다 17.1% 상승했다. 인천공항출입국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중국인 입국자 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 추세라면 올해 말 200만 명 돌파도 가능할 것 이라고 전망하고, 현재까지는 일본이 한국 방문 최다국이지만 중국인 비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향후 3년 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인이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찾은 외국관광지가 우리나라인 것으로 집게 됐다고 17일 밝혔다. 상반기 기준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면 한국이 중국인의 발길이 가장 빈번했던 최대 관광지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인의 한국방문은 2007년 92만 명, 2008년 101만 명, 2009년 121만 명, 2010년에 172만 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대사관 측은 과거에는 조선족 동포 중심으로 취업목적의 방한이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관광과 비즈니스 목적의 중국인 방문이 대세라고 전했다.「중국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에서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외국여행 수요가 매우 증가해 지난해에는 그 수가 5천 739만 명에 달했으며 올해에는 6천만 명을 돌파하고 2015년 경에는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4. 치열한 지방자치단체의 중국 관광객 유치 경쟁 최근 제주도가 중국 관광객 유치에 대박을 터트리자 전 세계 관광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실버관광과 의료관광, 가족단위 자유여행 등 각 지역별로 차별화된 유치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와 같이 지자체들이 저마다 중국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선 것은 다른 외국인들보다 중국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0년 외래관광객 국가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인 관광객 1명이 우리나라 여행에서 지출한 경비는 110만원이지만 중국인 관광객은 180만원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계자는 “계획을 세워 쇼핑하는 일본인에 비해 중국인들은 대량구매를 선호하기 때문에 각 지자체들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전략에 적극적인 것 같다” 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에 착안한 다양한 관광상품 등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 중국관련 문화유적지가 풍부한 화순 이제 우리 화순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중국관광객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 화순군의 현실을 감안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전략의 수립이 가능하다. 하나는 화순관내 중국관련 문화유적지나 문화자원을 가꾸고 다듬어서 이를 이용해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최근의 중국예술품 관련 시장의 팽창을 겨냥한 「아시아 고문화 유물박물관」을 건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한중일 고문화 교류거점화를 통하여 중국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화순에는 중국과 관련된 유적지가 매우 다양하다. 어찌 보면 중국과 가장 친한 고장이 우리 화순이다. 중국 성리학의 비조 주자를 모시는 주자묘(朱子廟)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에는 중국 송(宋)나라 때 사람으로 성리학의 체계를 이룩하여 주자학의 시조가 된 현인 주자[朱子 1130~1200, 이름은 희(熹) 호는 회암(晦庵)]를 모시는 사당인 주자묘(朱子廟)가 있다. 주자학은 1224년 고려로 정치적 망명을 한 그의 증손 주잠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 땅에 들어왔으며 안향, 정몽주, 이색, 길재 등 고려조의 학자가 이를 계승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국학이 되어 김종직, 조광조, 서경덕, 이황, 이이, 송시열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으며, 한․중․일 동양 삼국 유학의 주류를 이루어 현재 세계 각국 학자들에 의하여 재평가 연구되고 있다. 능주에 주자묘가 있는 이유는 주자의 손자인 주잠이 고려 고종 당시 망명하여 나주 영산포를 거쳐 능주 남정리에 살면서 신안주씨의 시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묘는 1978년에 건립되었으며 매년 어린이 날에 전국의 신안주씨들이 모여 춘계봉행 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곳을 방문하는 중국관광객은 한국에 이런 사당 있다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과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공자(孔子)를 주향으로 모시는 향교가 3곳 향교는 조선시대의 기본 이념이었던 유학을 근간으로 한 교육기관이었다. 유학은 공자의 사상에서 기반한 것으로 공자를 배향하는 기능과 유학을 공부하는 강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향교는 공자를 주향으로 한 공간이다. 전국적으로 233개의 향교가 있으며 전라남도에서는 유일하게 한 지역에 3개의 향교가 있는 곳이 우리 화순이다. 그만큼 유교문화가 융성했다고 할 수 있다. ○ 능주향교 능주면 남정리에 있다. 조선 태조 원년(1392년)에 능성향교로 창건되었다가 인조 10년(1632년) 능주목 승격 후 능주향교로 개칭되었다. 선조 30년(1597년)에 이르러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으며 선조 33년(1600년) 능성현령 하응도(河應圖)가 중건 하였다.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聖), 공문(孔門) 10철(哲), 송조(宋朝) 6현(賢), 우리나라 18현 등 모두 39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 화순향교 화순읍 교리에 있다. 조선 세종 12년(1430년) 창건되었다. 이후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의 병화로 인하여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3년(1611년) 현감 이인부가 화순현의 복현과 더불어 관아 정비 및 화순향교 대성전을 복원하였다. 공자를 비롯한 5성(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동복향교 동복면 연월리에 있다. 조선 세종 26년(1444년) 동복현감 하강지가 현 위치에 건립하였다. 이후 명종 19년(1568년) 현재의 위치에서 교촌마을로 이건하였으며 효종6년(1655년) 객사에 불이나 전패(殿牌)가 소실되자 동복현이 패현되면서 향교도 폐하였던 것을 현종 6년(1664년) 복현되면서 복교되었다. 대성전에 공자를 비롯한 5성(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국 현대음악의 神으로 불리는 정율성의 탄생지 중국 13억 인민이 칭송하는 중국 현대음악의 대부이자 중국의 3대 현대 음악가중 한사람으로 인정받는 정율성은 1914년 능주면 관영리 238번지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국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명령으로 그가 작곡한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정식 지정되었고, 2년 뒤인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도 그의 노래가 경기장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의 대표곡들은 박력 있고 경쾌한 리듬의 군가(軍歌)가 주를 이룬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팔로군 행진곡’은 나중에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당시 옌안에서 중국 공산당을 이끌던 마오쩌둥(毛澤東)도 그의 노래를 좋아해 흥얼거렸다고 한다. 1949년 베이징 텐안먼에서 마오쩌둥이 신중국 건국을 선포하고 의장대를 사열할 때도 정율성이 작곡한 이 노래가 텐안문 광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현재 그는 중국의 국립묘지 격인 베이징 시내 빠바오산(八寶山) 혁명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2009년에는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최종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살았던 집터인 능주면 관영리 283번지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가 다녔던 능주초등학교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세운 흉상이 있으며 ‘율성합창단’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중국 절강성의 적벽에 버금가는 화순적벽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 많은 수려한 절벽 경관이 발달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동복댐 상류에 있는 적벽(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창랑리, 물염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웅장함 그리고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며, 비록 일부 수몰되었으나 지금도 그 웅장한 경관은 여전하다. 1519년 기묘사화후 동복에 적거중이던 신재 최산두(崔山斗.1483~1536)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삼국시대 적벽대전으로 유명한 적벽에 버금간다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묘 화순군 한천면 정동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1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시조는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낸 존유(存裕)로,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인 주잠(朱潛)의 사위이다. 앞서 언급한 주잠은 중국 송(宋)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인물로, 1224년(고려 고종 11)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고려로 망명한 8학사의 한 사람이다. 구존유도 이때 동행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지만, 중국 사료에는 고려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잠이 능성(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정착하면서 능성주씨의 시조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구존유도 이곳에 정착하여 능성을 관향으로 삼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구존유의 아들 민첨(民瞻)이 평장사(平章事)를 지내는 등 후손들이 고려 조정에 계속 출사하여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기타 중국 관련 유적지 이밖에도 미국의 위트먼, 일본의 석천탁목과 함께 세계 3대 시 혁명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중국 한시로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호는 난고(蘭皐), 본명은 김병연(1807~1863)]이 14년간 화순의 자연경관을 즐기며 시를 쓰다가 생을 마감한 김삿갓 종명지이다. 본래 나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중국 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살았던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백제 무왕 28년(627년) 중국 당나라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했다는 유마사, 그리고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중국 당나라에서 남종선(南宗禪)을 이어 받아 귀국한 도의(道義)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개천사 등 화순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유교와 불교문화 유산이 풍부하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중국 북경의 서쪽에 있는 산서성 진중시에 화순현이란 명칭을 가진 곳이 있다는 것이다.(中国山西省晋中市和顺县) 1억 중국 관광객이 몰려온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중국관광시장의 팽창과 그들의 관광행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이 어마어마한 관광시장이 한국을 외면할지 모른다. 우리 화순도 집안에 귀하고 큰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마당을 쓸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세심하게 준비해야할 때다. * 자료 제공 : 화순군청(전라남도 화순부군수 민종기) <본 기사는 한겨레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기업이 제공한 정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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