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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215호(2004년 9월7일자)에 실린 ‘월스트리트에서 본 한국-우울증 걸린 올림픽 꿈나무’란 글은 독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심장부 월스트리트의 사람들 눈에 비친 한국 경제의 참모습을 짚어본 이 글을 두고 열띤 찬반 의견이 이어졌다. MIT 슬론 스쿨 MBA 과정에 몸담고 있는 저자는 지난 글의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가제)란 단행본을 곧 내놓는다. <이코노미21>은 저자와 도서출판 원앤원북스의 양해를 얻어 2월25일 출간 예정인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2차례에 걸쳐 <이코노미21> 독자들에게 미리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하) 자신감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가 있고, 비관론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가 있다. 미국은 자신감을 생산하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 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여전히, 비관론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 구조는 마땅히 성장해야 할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미국 정치인들은 자신감을 생산한다. 언론이 이를 받아 재생산해 대중에게 전한다. 행정부와 지역사회는 문화 행사, 독립운동 유적지, 박물관 같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이 재생산 과정을 거든다. 5천년 역사를 가진 한국인 시각으로 보면 시시하기 이를 데 없는 100년, 200년 된 건물을 역사 유물로 화려하게 포장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미국인들의 자신감은 식지 않는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와서 사람을 고용하고, 사업을 벌이고 싶어하며, 이 나라에 끊임없이 돈을 빌려준다. 미국인들 누구에게서도, 서민층인 택시기사나 청소원으로부터도, 부시 행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민주당원들로부터도, “이렇게 가다가는 미국이 망한다”는 식의 비관론을 들어본 일이 없다. 모두들 가치관이 달라 비판할 뿐이지, 그들의 반대편 사람들 때문에 속해 있는 공동체가 파탄날 것이라고 고함을 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꾸로 비관론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거대한 구조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언론, 양극화 현상, 당당하지 못한 정치가 그 구조의 밑동이다. 언론의 비관론 재생산 구조 ‘전국 초등학교에서 동시에 수학경진대회를 열었다. 어려운 시험이 끝난 뒤, 한 해외 연구기관에서 학생들의 경쟁력을 조사한다며 시골의 대한초등학교를 찾아왔다. 연구기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설문지를 돌린 뒤 걷어갔다. 얼마 뒤 그 외국 연구기관은 “설문조사 결과 대한초등학교 학생들이 써넣은 점수가 한국의 전체 초등학교 가운데 꼴찌였다”고 발표했다. 학급 신문들은 이 연구기관의 발표내용을 크게 다뤘다. 얼마 뒤 채점 결과로는 대한초등학교가 많은 서울 학교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미 대한초등학교 학생들은 의욕을 잃고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제 대한초등학교 학생들은 말한다. “채점 결과가 틀렸을 거예요. 유명한 외국 연구소에서 우리가 공부 못한다고 했잖아요.” 선생님들은 ‘잘못된 채점 결과’를 고치기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서글프게도 이건 실화다. 2004년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한초등학교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고, 해외 연구기관은 스위스 경영개발원(IMD)이다. 2004년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전 세계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를 峠Η杉? 한국은 종합 경쟁력에서 60개 국가 및 지역 경제권 가운데 35위에 머무르는 수모를 겪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2위), 홍콩(6위), 대만(12위), 말레이시아(16위), 중국(24위), 인도(34위)보다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관계는 전 세계 꼴찌, 대학교육 경쟁력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그날치 신문에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비탄이 가득 찼다. “국가 경쟁력 이대로 둘 것인가”(동아일보), “세계 꼴찌의 노사, 교육 경쟁력”(한국경제신문), “한국 국가 경쟁력 태국, 인도에도 뒤져”(경향신문) 그러나 IMD가 어떻게 국가 경쟁력을 평가했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IMD가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법은 위에 나온 해외 연구기관이 대한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쟁력을 평가한 방법과 거의 비슷하다. IMD는 국가 경쟁력을 비교하기 위해 323개 항목을 평가하는데, 이 가운데 112개 항목은 해당 국가 기업인과 자영업자 400명 대상의 설문조사다. GDP 등 객관적 지표 차이에 견줘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설문조사 결과의 특성상, 해당 국가 기업인들의 의견이 경쟁력 평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식의 조사가 통계학적으로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물건 A와 B 사이의 소비자 선호도를 비교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면서, A에 대한 설문은 한국에서 하고 B에 대한 설문은 미국에서 한다면 그 결과를 서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IMD 조사에서도 서로 다른 조사 대상 집단 사이의 심리적 상태의 차이가 통제되지 않았으므로 객관성에 있어서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다. 아니, 중요한 가치를 한 가지 갖고 있기는 하다. 조사 대상 집단들의 심리 상태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IMD 조사 결과 한국 국가 경쟁력이 세계 35위로 나왔다는 것은, 한국 기업인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적 자신감이 세계 35위 이하라는 뜻이다. 지난해 GDP성장률 등 객관적 경제지표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점을 감안하면, 심리지표로는 거의 꼴찌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한국 기업인들의 비관론을 IMD에서 받아쓴 결과를, 한국 언론이 되받아 확대 재생산한 꼴이다. 이런 보도를 본 기업인들의 비관론은 더 골이 깊어진다.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고,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의 여론을 좌우하는 월스트리트에서도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 한국 언론의 비관론이 짙어지면 한국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걱정도 짙어진다. 그러다 보면 한국을 걱정하는 보고서가 나오게 마련이다. 한국 언론은 글로벌 금융기관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부정적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이를 재포장해 더 큰 비관론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런 보도를 접한 한국인들은 더 비관적이 되고, 더 비관적인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결국, 외신에 등장한 내용이나 증권사 보고서를 보고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라며 대문짝만 하게 되받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은 사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 우스꽝스러운 건 그렇게 되받아쓴 대문짝만 한 기사를 보고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유력 언론이 이렇게 쓰다니 분명 뭔가 있다’면서 다시 깜짝 놀란다는 거다. 신문은 왜 비관론을 퍼뜨리나 비관론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은 언론, 특히 어젠더 설정 능력이 뛰어난 신문에서 주로 시작된다. 더 큰 기사를 발굴해 보도하려는 욕심에서 일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재계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박 회장은 2004년 12월21일 기자단과의 송년오찬에서 “최근 언론에서 각 기업들이 비상경영을 선포했다고 야단이기에 직접 알아봤는데 모그룹 빼고는 실제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곳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CEO들이 내년 경기를 비관한다는 설문조사 기사에 대해서도 “CEO들은 그런 설문에 잘 응답하지 않으며, 실무자들이 신문을 읽고 적당히 대리 응답한 것도 많은데 떠들썩하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나는 기사가 생산되는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CEO들의 경제전망 ‘긴급’ 설문조사를 벌여 비관론을 확대하는 기사로 만들어내고 싶은 기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기자들은 이슈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슈는 흐름을 타야 커질 수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한 상황이니, 거기에 맞춰 기사를 써야 기사가 크게 실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다. 여기다 산업 일선의 CEO들이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면 이건 정말 큰 뉴스가 될 수 있다. 대기업 CEO가 맥락이야 어쨌든 ‘비상경영’을 언급했다면 최소한 경제면 톱 기사감이다. 탐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990002%% 기업 CEO들은 바쁜 사람들이다. 직접 만나 설문조사하기는 물론 어렵고, e메일을 보내 답신을 받기도 쉽지 않다. 그것도 ‘긴급’히 하는 거라면 더 어렵다. 그러니 기자들은 기업 비서실이나 홍보실의 실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꼭 설문을 받아다 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고 협박조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을 것이다. 마감 독촉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그 실무자들에게도 독촉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많은 실무자들은 CEO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적어 보내야 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이나 경제연구소에서 4~5%라고 하는데 비관론이 팽배하니 조금 깎자고 생각하면서 2~3%대 숫자를 적어 보냈을 것이다. 보내는 사람은, 어차피 이름도 드러나지 않는 설문조사고 많은 의견 중의 하나이니 큰 상관은 없을 거라고 자위했을 것이다. 이렇게 부실하게 적어낸 숫자가, 신문지면에서는 CEO들의 비관론과 ‘비상경영’으로 둔갑하면서 비관론을 확대 재생산한다. 사실 신문들이 주로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데는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신문들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체감 경기가 매우 나쁘다는 점이다. 신문은 100% 내수산업이다. 진입 규제가 풀린 지 15년 남짓 지나며 시장 참여자가 크게 늘어난 탈규제 산업이다. 공짜 제품을 뿌리는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새로 만난 산업이다. 신규 진입자가 늘어나거나 가격 경쟁이 시작되는 건 어떤 산업에도 재앙이다. 그런데 한국의 신문산업은 지난 몇 년 동안 2가지 재앙을 한꺼번에 겪어야 했다. 게다가 소비심리는 거꾸로 위축돼 내수는 오히려 후퇴했고 내수경기와 연동하는 신문 광고도 따라서 후퇴했다.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 보니 경제를 어렵게 보는 건 인지상정이다. 신문이 비관론을 전파하는 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또 한 가지 이유다. 그러나 이해가 간다고 이 구조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물론 웃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산된 비관론이 부메랑처럼 되돌아가 한국 경제의 목을 겨누고 있으니 말이다. 비관론은 신문 스스로에게도 부메랑이 된다. 스스로 확대 재생산한 비관론이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내수경기를 후퇴시키고, 내수에 의존하는 신문 스스로의 광고판매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된다. 이렇게 단단히 자리 잡은 비관론의 확대 재생산 구조를 깨뜨리지 못하면, 한국 경제 부활의 희망은 현실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보스턴 = 이원재/ MIT 슬론 스쿨 MBA 과정 lasttime@freechal.com 이원재는 <한겨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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