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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무단게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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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숙의 3분 코칭
경력사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보는 자리였다. “자, 지금부터 귀하의 경험과 역량에 대해 요약해서 설명해 주시죠. 약 3분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한 면접관이 이렇게 말하자 나머지 면접관 3명은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이제 좀 길게 들을 차례다, 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뜻밖에도 이 응시자는 길게 대답을 하지 않고 질문을 했다. “예. 제가 그냥 말씀을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면 거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떤 역량이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면접관들은 내심 놀라 의자에서 등을 떼어야 했다. “아, 예. 아무래도 임원의 어시스턴트 일이니까 대인관계 기술이 필요하고, 의사소통도 명확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글도 어느 정도 잘 써야 하죠. 물론 기본적으로 성품도 좋아야 하고요.” 얼떨결에 이렇게 말을 해놓고 응시자의 대답을 들었다. 이 응시자는 면접에서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짐작대로 그는 합격했다.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효과적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접관들은 어려운 자리에서도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용기와 재치에 가점을 주었다. 흔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대화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대화의 방향을 통제한다.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게 되니까. 질문을 내치는 사람은 드물다. 질문을 받으면 대개는 생각해 보게 되고 대답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대방에게 묻는 대신에 추측을 하며, 추측을 토대로 말을 늘어놓는 데 익숙하다. 그 추측이란 게 사실은 얼마나 일방적이며, 잘못될 수 있는 것인가? 아이가 학원에서 받아오는 수학 성적이 계속 낮았다. 무조건 “공부 더 열심히 해라, 문제집 매일 몇 장씩 풀어놔라”고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에 질문을 해봤다. “너, 수학을 어느 정도로 잘하고 싶니?” 그랬더니 나도 잘하고 싶다, 반에서 1, 2등 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에서 1, 2등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당연히 열심히 공부해야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 아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꾸 까먹어요. 꼭 시험 보는 요일에만 생각나고 학원에서 돌아오면 그 생각이 다 없어져요.” 아하! 듣고 보니 아이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잊어버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대화를 통해 아이가 생각해 낸 방법을 실행했을 때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었고, 성적이 올랐을 때 아이의 반응도 매우 달랐다. “내가 뭔가를 해냈다!” 는, 성취감이 거기엔 있었다. 물론 질문에도 질이 있다. “돈 부쳤어?”, “학교에서 별일 없었냐?”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직원에게 “잘돼 가나?” 라고 건성으로 물어보는 것도 상대방의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질문의 기술'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일방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버리고 질문을 통해 대화를 진전시키는 시도를 해보자. 병원 얘기다. 심하게 항의하는 고객 때문에 혼쭐이 난 원무과 직원이 있었다. “정말 성격 나쁜 고객들 참 많아요. 저러고들 어떻게 사는지, 원. 스트레스 팍팍 쌓이네요.” 라고 푸념을 한다. 거기에 대고 “그 사람 정말 인상 더럽더구만….” 하면서 같이 고객 욕을 하는 것, 또는 “그러니까 좀 친절하게 해봐. 자네가 퉁명스럽게 하니까 더 화를 내지!” 라고 핀잔을 주는 것, 그런 건 효과가 없다. 그의 팀장은 이렇게 질문을 했다. “정말 힘들었겠네. 어떻게 하면 고객 불평을 좀 줄일 수 있는지, 좋은 아이디어 없어요?”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뜻밖에도 고객접점에 있는 직원만이 알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두세 가지 제안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질문은 할 수 있다. 까다롭게 구는 고객에게도, 불만에 가득 찬 직원에게도,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자녀에게도 말이다. 말해 주는 사람은 금과옥조 같은 얘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말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일방적인 메시지, 잔소리, 공자님 말씀으로 듣기 쉽다. 상대방이 정말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게 하려면 그에게 질문을 하라.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부사장 Helen@eklc.co.kr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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