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면접 시험은 참 어렵다. 예전에는 1, 2차 다 붙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아쉽게’ 떨어졌다는 말이 통했는데, 요즘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정말 물정 모른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서류심사나 적성검사는 최소한의 필터링 기능을 할 뿐, 진정한 심사는 면접에서 이뤄지는 것이 요즘 인재 채용방법의 주조이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서류나 시험은 재수 좋게 통과했는데, 면접 때 ‘그만’(아쉽게가 아니다) 들통이 나고 말았다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시험 점수는 속여도 면접관 면전에서 사람 속이기는 절대로 쉽지 않은 것이다.
헤드헌터들은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요즘은 기업이든 정부든 공히 면접 시험을 강화하는 추세다. 물론 공공성, 공정성, 투명성과 같은 비경쟁적 가치를 좀 더 챙길 수밖에 없는 정부나 공기업은 여전히 서류, 필기 시험, 각종 자격증 가산점 등을 챙기지만, 그럴 필요 없는 기업은 애초에 면접을 강화해 왔고, 사실은 공공부문도 최근에는 이를 슬금슬금 따라가는 추세다.
면접 강화는 기업의 핵심인재 확보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덩치 큰 시장이 고맙게도 느릿느릿 움직이고, 그래서 기회도 많고, 결정은 위에서 다 해도 되고, 게다가 좀 결정이 늦어도 상관없던 시대에서는 핵심인재란 게 별게 아니었다. 일 꼼꼼히 하고, 성실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전혀 다르다. 시장은 여전히 덩치는 크지만 더 이상 한 기업이 좌지우지하기 어렵게 세분화돼 있으며, 소비자 기호와 시장 상황은 정말 그때그때 다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정말 용한, 살얼음판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핵심인재의 기준에선 문제 해결 능력이 으뜸이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과제를 찾아내고, 판단하고, 스스로 해결의 진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하다. 그렇지 못한 인재는 그래서 그냥 조직에 큰 도움은 안 되는 보통 인재로 대우받는 게 아니라,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이 된다.
면접과정에서 기업들이 현장에서 부딪칠 수 있는 매우 복합적이고 어려운 상황을 끄집어내 후보자의 지식, 판단, 조정 능력을 한꺼번에 시험하려고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LG전자는 ‘당신이 HDTV용 핵심 반도체칩 설계자라고 가정하고 시제품 중 하나를 선택해 상용화 방안을 만들라’는 문제를 냈고, KTF는 ‘디지털 가전이 휴대폰으로 수렴되고 있는데, 어떤 유형의 차세대 휴대폰이 등장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문제를 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다. 부장도 이사도 아닌데, 그런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기업은 그럴 수밖에 없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의 말대로 2위는 포커판의 그것처럼 가장 많은 돈을 쓰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이 동네 법칙이기 때문이다. 2위를 하지 않으려면 최고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그럴 수 있는 인재를 뽑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돈 내고 사람 뽑는 ‘갑’이다.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이사진이라 할지라도 언뜻 대답하기 난감한, 그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분명 없을 거 같은데, 알고 보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지원하는 산업과 기업에 대한 ‘넓고도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식견을 선보이며,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는 탈락자들의 볼멘 항의를 원인 무효로 만들어버린다. “아직 어린 싹이 저 정도인데 다 크면 오죽하랴.” 면접 보는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드디어 하나 찾았다”는 기쁨에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다른 것은 한 차원 높은 고민이다. 문제가 문제인 것은 그냥 달려들어서는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소 지식과 평소의 고민으로 뚝딱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도 아니고, 이런 문제 해결했다고 “나 잘했지” 하고 엄마한테 뛰어가 자랑했다간 잘못하면 쥐어박힌다. 세상은 넓고 이런 인재는 많다.
<다빈치코드>의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는 손녀 소피 느뵈에게 생일선물 하나를 줘도 몇 단계 암호를 풀어야 찾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고, 선물받을 욕심과 할아버지에 대한 묘한 경쟁심리 때문에 암호 풀기에 열심이었던 소피는 결국 암호전문가가 돼 할아버지의 죽음의 의문을 풀어나간다.
문제 해결 능력은 어느 정도는 타고나지만 대부분은 훈련된다. 소니에르와 같은 할아버지가 없는가? 그러면 스스로에게 문제를 내라. 그리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라.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진국영/ 커리어케어 리서치센터장 jinieman@careerc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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