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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돈 안된다” 애초계획 3분의 1만 집행
서민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낮은 금리로 대학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가 정작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은행들이 학자금 대출은 품만 많이 들고 돈은 안 된다고 보고, 심사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은행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번 학기 등록 때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싼 이자를 물리는 할부금융 회사나 대부업체, 심지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은 대출이자 연 8.25% 중 절반 정도인 4.25%를 정부가 대줘 4%(인터넷 대출은 3.75%)의 저리로 학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올해는 국민, 하나, 한국씨티은행과 농협 등 11개 시중·지방은행이 대학생 학자금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 돈 없으면 학자금 대출도 못 받아=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학 3학년생인 김아무개(25)씨는 몇 해 전 아버지가 실직한 뒤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까지 해가며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김씨는 올해부터 저소득층에게 학자금 대출 지원을 늘린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달 말 국민은행에 신청을 냈으나, 은행 쪽은 “다른 문제는 없는데, 거래 실적이 적어 신용평점 미달”이라며 대출을 거부했다. 김씨는 “학생이 은행 거래를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곽아무개(19)씨는 한국씨티은행에 대출 신청을 했다가 부모가 신용불량자란 이유로 대출을 거부당했다. 곽씨는 보험료만 내면 대신 보증을 서준다는 보증보험사도 알아봤지만, 역시 부모가 신용불량자란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 곽씨는 “졸업 뒤 취직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 갚게 하는 게 학자금 대출 아니냐”며 “부모 신용도까지 보고 이런저런 조건에 다 따질 거면 뭐하러 이런 제도를 만들었느냐”고 반문했다. 은행들은 학자금 대출을 하면서 겹겹으로 자격을 따진다. 우선 대출을 받아가는 학생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신용불량자인지, 카드 연체대금이나 다른 대출은 없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라지만, 국민은행처럼 거래 실적이 없는 경우 자격미달로 분류하는 곳들도 있다. 또 보증인 자격도 까다롭다. 은행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연봉 1500만~2000만원 이상 직장인이나 연간 재산세 3만~10만원 이상 납세자 등이다. 보증인이 없는 경우 신용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장기 대출의 경우 대출금의 11% 정도여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 ■ 약속의 3분의 1도 못미치는 대출 실적=교육인적자원부가 8일 잠정 집계한 결과를 보면, 일부 은행들의 올 상반기 학자금 대출 실적이 정부와 약정한 금액의 3분의 1에도 못미치고 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은 애초 550억원을 계획했으나 38%인 210억원을 대출하는 데 그쳤고, 하나은행도 250억원 계획에 대출은 83억으로 38%에 불과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애초 계획은 350억원이었는데 대출은 90억에 그쳐 30%도 안 됐다. 다만 조흥은행과 농협만이 정부와의 약정금액을 다 채우고 추가 대출을 해주었다. 올해 등록금까지 크게 올라 부담이 커진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은행들의 대출 기피로 이자가 비싼 제2 금융권이나 사채시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과 전단광고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는 할부금융 회사들은 대출금리를 최고 연 17%대까지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3.5∼4%의 수수료까지 챙기고 있다. 은행들이 학자금 대출을 꺼리는 이유로 소액이라 일손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연체율도 높아 관리가 힘든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학생들은 이사나 군 입대 등으로 소재 파악이 힘든 경우도 많아 일일이 관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졸업 뒤에도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기피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 하반기부터는 정부가 기금을 만들어 직접 학자금 대출의 보증을 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대출 창구인 은행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은행들이 돈만 보지 말고 공공의 이익도 좀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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