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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blue@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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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미디어가 뒤통수를 쳤다.”, “스카이라이프가 억지를 부려 우리 이미지를 훼손시킨다.” 양쪽의 주장을 한마디로 옮긴다면 이렇다.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사업자 스카이라이프와 막강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복수채널사업자(MPP) CJ미디어. 양쪽의 분쟁은 단순한 기업간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국내 유료방송시장의 뿌리 깊은 갈등의 단면을 드러낸다.
‘CJ미디어가 공급해 온 m.net(604번) 채널이 CJ미디어측의 일방적인 송출 중단으로 방송이 중단되었습니다. 스카이라이프는 m.net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시청자 여러분께서 다시 m.net 채널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2월26일, 습관처럼 위성방송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들은 뜻밖의 공지에 어안이 벙벙했으리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나오던 음악채널 m.net과 영화채널 XTM이 하루아침에 먹통이 되었으니 말이다. 방송을 중단한다는 사전 고지마저 없었던 터라 시청자들의 황당함은 더했고, 스카이라이프의 전화기는 고객들의 분노로 하루 종일 울어대야 했다.
CJ미디어가 스카이라이프에 공급해 온 m.net과 XTM의 송출을 2월26일자로 중단했다. 이에 앞서 양쪽은 채널공급 중단을 둘러싸고 몇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방송위가 중재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CJ미디어는 결국 두 채널의 송출을 중단했고, 스카이라이프는 법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호소한 상태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의 몫으로 남았다.
CJ미디어, 방송 중단 4시간 전에 ‘통보’
우선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지난 1월12일 CJ미디어가 스카이라이프에 한 통의 공문을 발송했다. 자신들이 공급하고 있는 음악채널 m.net과 영화채널 XTM의 송출을 2월1일부터 중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m.net과 XTM을 제외한 푸드채널, KMTV,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등 자신들이 공급하는 채널에 대해서도 협상을 진행하자고 밝혀왔다.
스카이라이프는 발끈했다. 국내 대표적 복수채널사업자(MPP)인 CJ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채널공급 중단을 ‘통보’한 것은 불공정거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카이라이프도 대응에 나섰다. 1월17일에는 혼탁한 유료방송시장을 이 참에 개선하도록 정책을 검토하고 분쟁도 중재해 줄 것을 방송위원회에 요청하는 한편, 다음날인 18일에는 CJ미디어가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신고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했다.
1월19일에는 양쪽 대표가 만남을 가졌지만 별다른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일주일 뒤인 26일에는 방송위 주관 아래 양쪽 실무자가 모였음에도 팽팽한 의견 대립만 벌이다 끝냈다. 다음날인 1월27일, 스카이라이프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널공급 중단 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양쪽의 분쟁은 법정으로 옮겨갔다. 이후 협상과정에서 CJ미디어는 채널 송출 중단을 일시 유보했고, 스카이라이프는 다시 복수방송사업자(MSO)인 태광MSO를 CJ미디어의 배후로 지목하고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CJ미디어가 발끈해 3월1일을 기해 m.net부터 합법적으로 빼겠다고 통보했고, 2월25일 저녁에는 ‘2월26일 0시를 기해 m.net과 XTM의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팩스를 스카이라이프에 발송했다. 그리고 팩스의 내용대로 2월26일 0시를 기해 두 방송의 스카이라이프 송출을 끊었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경과다. 이처럼 사건 개요를 읽는 것만으로도, 양측이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쳤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자.
우선, CJ미디어가 m.net과 XTM 두 채널을 스카이라이프에서 ‘갑자기’ 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CJ미디어는 “경영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1억원이라는 손실을 기록하면서 새 경영전략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수신료 중심인 위성방송 대신 광고 수익이 주를 이루는 케이블방송에 주력하기로 결정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2곳 모두 방송을 내보내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유료방송업계는 위성이나 케이블 중 한쪽 플랫폼에만 방송을 독점 공급할 경우 여러 혜택을 준다. 두 플랫폼이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플랫폼은 수익구조가 다르다. 위성방송은 시청료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이 전부이며, 케이블방송은 광고 수익과 시청료 수익이 7대 3 정도로 광고 수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시청료 수익을 노린다면 위성방송에, 시청률을 올려 광고 수익과 연계하고자 한다면 케이블방송에 주력하는 것이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이 경우 케이블방송에만 공급하는 것을 ‘케이블 온리’라고, 위성방송에만 주력하면 ‘위성 온리’라고 부른다.
CJ미디어가 ‘케이블 온리’를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CJ미디어가 지난해 위성방송을 통해 거둔 시청료는 전체 매출의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양쪽에 모두 방송을 공급하면서 수익을 분산하는 대신, 케이블방송사업자(SO)와 손을 잡고 광고 수익과 함께 독점 공급에 따른 혜택까지 누리겠다는 게 CJ미디어의 계산이다.
케이블SO, 특별대우 앞세워 채널독점
%%990002%% 경쟁 MPP인 온미디어가 ‘케이블 온리’로 돌아서면서 큰 성장세를 보인 것도 CJ미디어측에 결정적인 자극제가 됐다. 온미디어는 2003년 1월, 그동안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내보냈던 투니버스(만화채널), 슈퍼액션(영화채널), MTV(음악채널) 등 이른바 ‘황금 채널’의 송출을 중단했다. CJ미디어측은 이번 채널 중단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와 같은 MPP인 타 회사의 경우 SO에 대한 독점공급 채널을 늘림으로 해서 2002년 21.42%에서 2004년 30.03%로 점유율이 급신장한 반면, 우리는 양쪽에 채널을 공급하면서 2002년 점유율 6.5%에서 2004년 8.88%로 소폭 성장했을 뿐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조바심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와 같은 MPP인 타 회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온미디어를 가리킨다.
케이블방송업계도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켰다. 300만 가입자를 거느린 대표적 MSO인 태광MSO는 지난해 11월 필리핀 세부에서 ‘디지털 시대의 PP 역할 및 발전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유재홍 태광MSO 부회장은 “SO에게 채널을 독점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특별대우를 하겠다”며 “선택하는 것을 봐서 페이버(favor)와 불이익을 분명히 하겠다”고 은근히 ‘줄서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홍 부회장은 케이블방송SO협의회장을 겸하고 있다. CJ미디어가 2005년부터 몇몇 인기 채널을 스카이라이프에 공급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것이 스카이라이프가 CJ미디어의 ‘배후’로 태광MSO를 지목한 이유이다. 스카이라이프측은 공정위에 제출한 신고서에서 “태광MSO가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고 방송시장의 공정 경쟁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CJ미디어가 채널송출을 중단한 데도 태광MSO가 제소당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월31일 방송위와 가진 조찬모임에서 CJ미디어측은 “(채널 중단은) 온미디어와 SO의 삼각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CJ미디어측은 3월3일 전화통화에서 “채널송출 중단은 태광MSO측과는 무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스카이라이프 “PP 횡포에 마냥 당할 수는 없어”
CJ미디어의 계약 위반 여부도 관심거리다. CJ미디어와 스카이라이프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m.net과 XTM의 계약기간은 각각 2004년 12월31일과 2005년 12월31일까지다. CJ미디어가 채널공급 중단 공문을 보냈던 2005년 1월12일을 기준으로 m.net은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XTM은 1년여 기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다르다. 양쪽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갱신에 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만료 뒤 60일까지는 종료 전 계약에 따라 프로그램을 공급하도록 돼 있다. 또 계약 도중 해지를 원하더라도 90일 전에 사유를 통보하도록 명시돼 있다. 즉 m.net은 2월 말까지 방송을 계속해야 하며, XTM도 사전 통보 없이 공급을 중단하면 계약 위반이 된다.
스카이라이프가 문제 삼은 대목도 여기다. CJ미디어가 스카이라이프에 ‘2월26일 0시를 기해 XTM과 m.net의 송출을 중단한다’는 공문을 팩스로 보낸 시간은 2월25일 저녁 7시44분. 방송 중단을 불과 4시간16분 앞둔 시점이었다. 스카이라이프는 “이는 위성방송 시청자의 시청권을 원천적으로 무시한 행위”라며 “법원의 심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CJ미디어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지배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CJ미디어측은 “이미 협상과정에서 송출 중단 9일 전에 명확한 입장을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2월17일 비공식 미팅에서 최고경영진이 스카이라이프 중요 임원에게 26일 이전에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최종 통보했다”는 것이다. CJ미디어는 “스카이라이프가 오히려 사전 공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의 불편을 초래했다”며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려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남은 XTM의 송출을 중단한 데 대해서는 “손해배상에 대한 법적 책임은 감수하겠다”고 책임을 시인했다. 법적 절차에 따라 배상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스카이라이프측은 손해배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이 참에 유료방송시장의 해묵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지난 2003년에 온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채널을 뺄 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했다”며 “이번에도 양보할 경우 앞으로 다른 PP들의 이탈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스카이라이프측은 “DMB와 IPTV의 등장 등으로 방송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자본력을 갖춘 대형 PP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공정거래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방송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불공정거래 제재 위한 제도 뒷받침 시급
%%990003%% 정작 이번 사태로 직접적인 불편을 겪은 것은 시청자다. CJ미디어가 m.net과 XTM의 송출을 중단한 2월26일 자정부터 스카이라이프에는 방송 중단을 항의하는 시청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스카이라이프에 따르면 3월1일까지 걸려온 항의전화만도 710건에 이른다. 대부분은 가입자들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채널을 중단한 데 대한 항의였지만, 일부는 대체 채널이나 요금 감면혜택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기미도 보였다.
스카이라이프도 보상 절차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로선 손해배상 차원에서 수신료의 일부를 깎아주거나 프리미엄 채널을 한시적으로 무료로 시청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개 채널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가입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해 주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채널공급자나 이사회의 합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가 남아 있는 상태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보상 규모에 따라 CJ미디어쪽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늦기 전에 공정 경쟁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플랫폼 가운데 한쪽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경우, 공정 경쟁을 위해 한시적으로 PP들이 한쪽 플랫폼에 채널을 독점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와 사정이 비슷한 미국 유료방송시장의 경우 ‘프로그램 접근 규칙’(Program Access Rules)을 제정해 PP가 특정 SO와 독점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측도 “171만 가입자의 위성방송과 1200만 가입자의 케이블방송이 경쟁할 경우 PP가 어느 쪽에 몰릴지는 불 보듯 뻔하다”며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출 때까지는 PP가 힘 있는 특정 사업자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위도 제도 정비에 나섰다. 지난 2월23일에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예방하고 자율적인 공정거래 질서를 유도하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과 채널의 유통 등 방송시장에서의 공정거래 질서 정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공표했다. 실제 유료방송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각 사업자별로 지켜야 할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아직은 자율적인 기준에 불과하므로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법적 제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CJ미디어가 m.net과 XTM의 채널송출을 중단하면서, 양쪽의 1라운드 공방은 끝났다. 남은 것은 법원과 공정위의 ‘판단’이다. 법원은 일단 스카이라이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3월3일 CJ미디어측에 “스카이라이프와 체결한 계약에 따라 2006년 3월1일까지 XTM 채널 공급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공급을 중단해선 안 된다”며 “이를 위반할 경우 위반 일수 1일당 2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CJ미디어의 계약위반에 대한 스카이라이프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스카이라이프는 “CJ미디어가 아직 위성방송에 남겨둔 KMTV, 푸드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등의 채널송출도 중단하겠다고 다시 우리를 압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CJ미디어 관계자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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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쟁점별 스카이라이프와 CJ미디어의 입장 비교
협상주도권 여부 = 자본력과 입김 앞세운 MPP의 횡포다./전국 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가 시장지배적 지위다.
계약준수 여부 = 계약기간을 남기고도 일방적으로 파기해 손실을 입혔다./손해배상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
시청자권익 여부 = 일방적 송출 중단 통보로 시청권 무시했다./미리 통보했으며,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스카이라이프 책임이다.
SO의 입김여부 = 태광MSO를 제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태광MSO와 관계없는, 경영전략의 변화일 뿐이다.
채널추가 송출중단 여부 =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나머지 4개 채널도 빼려 한다./결정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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