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1 17:12
수정 : 2005.03.11 17:12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무단게재 금지)
|
고현숙의 3분 코칭
10년 전, 예전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할 때였다. 경력 3년차의 한 직원이 부서를 옮기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해왔다. 그녀는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디자인이라는 창의적 일을 하는 데 한계를 자주 느낀다면서, 차라리 제작관리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편집이 완료되면 그 후 공정은 제작 관리팀이 맡고 있었다. 자신은 제작 업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힘든 일이지만 자기 스타일에 그게 더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또 친하게 지내는 제작관리팀장이 자신을 잘 지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괜찮은 변동이었다. 좀 더 실력 있는 편집 디자이너를 새로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제작관련 사고가 빈발하던 제작관리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얼마 뒤 그렇게 부서 이동 발표를 했다. 그런데 그녀가 보인 반응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좋아하기는커녕 아예 회사 한구석의 회의실에 가서 오후 내내 펑펑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한 직원이 와서 전하길, 그녀는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니, 분명히 자기 입으로 옮기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해 놓고 막상 그렇게 발표를 하자 이렇게 어깃장을 놓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야. 도대체 무슨 변덕인가? 그녀에게 가서 얘기를 들어봤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얘기인즉, 자기가 디자인 능력이 없어서 제작으로 좌천시키는 것 아니냐며, 후배들도 있는데 창피해서 회사를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나는 당황스러울 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상하는 여름 나물이거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탁구공 같은 것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네가 원하던 거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고 얼마 뒤 제작관리 팀으로 옮겨갔다.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땐 대체 왜 그랬니?” 하는 물음이 내 맘 속에 맴돌곤 했다.
몇 년 전 비즈니스 코칭 공부를 하면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결정 그 자체보다 그 결정에 대한 해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면 일에 대한 의욕으로 나타나지만,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그에 대한 갈급함이 워낙 크기 때문에 중요한 의제, 당위가 있더라도 헌신하는 분위기로 나아갈 수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무척 사무적으로 부서 이동 결과만 발표했다. 그 결정이 그녀와 조직에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분명하게 발표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업무에 적합한 재능과 의욕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 주는 표현도 없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은, 의사 소통에서 심리적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산소가 결핍되어 그걸 원하는 그녀에게 나는, “네가 원하던 결과가 그거 아니냐?”는 다그침으로 대응한 꼴이었다.
최근에 한 직원의 업무를 전환시킬 일이 있었다.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부서 이동의 사유였음은 서로간에 명백했다. 나는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그가 이 조처를 통해 뭔가 배우길 바랐다. 나도 이제는 좀 다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전 직원 앞에서 그가 새 업무에 적합한 사람이고 그 일을 잘 발전시킬 기대를 그에게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박수 속에 출발하는 분위기도 좋았고 심지어 그는 축하인사까지 받았다. 알아야 할 사람들은 그 부서 이동의 맥락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평판,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기에 대한 인식은 곧 사회적 생명이라 하지 않는가. 그것을 존중해 주고 그 사람의 명예를 살려주는 일. 이것을 나는 한때 조작적인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억지로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위선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실제로 엄청난 잠재력을 내면에 갖추고 있는 인간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 뿐이었다.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부사장 Helen@eklc.co.kr
 |
 | |
고현숙은 한국리더십센터 부사장으로, 기업 CEO와 임원들을 코칭하고 있는 전문 코치이다.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리더십과 코칭을 주된 과제로 기업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 |  |
 |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