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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8 14:15 수정 : 2005.03.18 14:15

일러스트레이션 권철

푸뚜앙떼리요르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지만, 논밭이나 산과 같은 자연생태계는 한번 없어지면 복구가 어렵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돈 그 자체보다도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아파트 숲 건설 구상은 당장 철회되거나 최소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내가 사는 마을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리다. 1997년에 이곳 고려대 서창캠퍼스에 부임하면서 연로하신 어른을 모시고 세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공부하며 살고자 작은 단층 귀틀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안식년 관계로 일년간 집을 비운 사이 우리 마을엔 마을과 후손들의 장래를 심대하게 좌우할 대형 공사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있었다. 이 공사 이름은 ‘조치원 신안리 대림아파트 신축공사’이고 무려 1천세대(약 3천명)가 입주하는, 자그마치 41미터 높이의 15층짜리 아파트 숲을 만든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물론 어떤 이는 “그곳에 땅값 올라 좋겠네.”라고 할지 모르나,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내가 여기서 진실로 우려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절차적 측면에서 현재의 주민들은 물론 그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줄 대규모 아파트 사업 구상에 대해, 주민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다.

둘째, 생태적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신안1리 마을은 작은 산, 골짜기, 구릉지 등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농촌마을인데, 무려 1천세대나 되는 15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마을 주민들이 매일 아침 삶의 활기를 얻곤 하던 마을 뒷산을 더 이상 친근하게 대하기 어려워진다. 조망권이나 일조권 침해도 심각할 것이다. 또 자연적인 공기 흐름이 차단되어 마을 중심가의 나쁜 공기가 예전처럼 시원하게 소통되지 못해 여러 가지 건강상 피해를 줄 것이다.

셋째,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주민들은 단층 내지 저층의 단독주택 위주로 생활하는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구 주민과 신 주민 간에 경제적 측면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위화감이 생기기 쉽다. 작지만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온 우리 마을이 ‘아파트 사람들’과 ‘주택 사람들’로 양분될 것이다.

넷째,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이 아파트 단지는 최소 33평형, 최대 54평으로 되어 있어, 결코 서민을 위한 공동주택은 아니다. 지난날 용인이나 지금의 판교 사례에서도 보듯 중대형의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 일차적으로는 돈 있는 사람들이 시세차익만 챙기고 떠나버리고 다음에 현지의 주민들이 살고자 한다면 이미 가격은 상당히 올라가 쉽사리 입주하기 어렵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도 살 수 있는 부유층만 들어온다. 이런 면에서 보아도 현 아파트 계획은 결코 현 주민의 필요나 욕구를 반영한 것도 아니며, 나중에 서울 등 외지 자본들은 돈만 벌고 떠날 수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마치 ‘그림의 떡’처럼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생각건대, 이 사업을 시행하거나 투자한 이들도 우선은 많은 돈을 벌어 ‘조용한 전원마을’에 가서 아담한 집을 짓고 살기 원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면 자기 집 앞에 어느 날 갑자기 1천세대 규모의 15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걸 싫어할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지만, 논밭이나 산과 같은 자연생태계는 한번 없어지면 복구가 어렵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돈 그 자체보다도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아파트 숲 건설 구상은 당장 철회되거나 최소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 절차상의 수정: 기존 주민들에게 아파트 건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주민들에게 정직하게 설명하고 또 주민들의 의견을 성실히 수렴하여 최종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최소 3차례의 주민설명회를 개최해야 한다.

- 내용상의 수정: ‘15층의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5층 이하 서민형 주택’ 또는 기존 마을과 조화되면서도 모범이 될 ‘전원마을 단지’를 건설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걸 걸고 싸울 것이다. 이번 건은 비단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기, 공주 지역 ‘행정도시’ 건설과 더불어 불어닥칠 ‘난개발’ 문제를 해결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곳곳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보태어주시길 소망한다. 강수돌 ksd@korea.ac.kr / 1961년생. 경영학(노사관계)을 공부하면서 돈의 경영학이 아니라 삶의 경영학을 고민하고 있다.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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