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4 18:42
수정 : 2005.03.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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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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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비판이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 우려’다. 지난 23일 나온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부에선 특히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기초 수급자) 대책이 사실상 원금 탕감이라는 점을 들어, “빚을 잘 갚고 있는 사람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거나, “빚을 떼먹는 심리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정부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기초 수급자도 수급자 신분을 벗어나면 원금을 100% 상환해야 하는 만큼 원금 탕감이 아니다”라고 극구 해명한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이런 비판이나 정부의 해명은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기초 수급자란 정부의 보조금으로 어렵게 사는 극빈층이다. 애초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무분별하게 대출을 한 금융회사들도 ‘원죄’가 있는 것이다.
또 기초 수급자들의 채무는 금융회사들도 “더이상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상당 부분 손실로 처리한 악성 채권이다. 사실상 ‘휴지 조각’이다. 이를 놓고 제3자들이 나서서 “깎아주면 안된다”느니 “깎아주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는 상황 자체가 어찌보면 희극이다.
대출이 시장원리에 따른 거래인 것처럼, 채권자의 잘못이나 채무자의 처지 변화로 부실해진 채권의 값을 깎아주는 것 역시 시장원리에 따른 정상적 거래다. 실제로 개인 회생이나 파산 등 공적 채무조정 제도는 원금 감면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은행과 카드사들도 채무자의 상황 변화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미 원금을 깎아주고 있다. 드러내놓고 하지 않을 뿐이다.
잘 몰라서 사리에 맞지 않는 비판을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실상의 원금 감면 조처를 내놓고도, 이런 비판이 두려워 감면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정부의 모습은 ‘철학과 자신감의 부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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