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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불공정 납품거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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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물품 수령증 못받아도 “관행이니까”
중소기업청 현장조사 결과현금으로 주는 비율 상승
대금결제 환경은 좋아져 #1. 지난 10월 경기도의 한 식품업체에 닭·돼지용 사료를 납품한 ㄱ사 사장은 어이없는 요구에 맞닥뜨렸다. 물건을 사줘 판매를 촉진시켰으니 판매장려금을 내라는 것이다. 물건을 대는 사료회사 네 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이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업체들보다 5% 낮은 가격으로 사료를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2. 대기업 건설사인 ㄴ사는 납품대금을 자사의 제조물로 대신해 왔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들에게 회사의 미분양 아파트를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또다른 대기업 건설사인 ㄷ사의 국외법인은 국내 중소기업에게 줄 공사대금을 떼먹고도 국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지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대·중견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중소기업청이 매출액 100억원 이상인 위탁기업 1190곳과 이들 업체에게 납품하는 수탁기업 1528곳 등 2718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수탁기업의 17.1%가 “납품 때 불공정거래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불공정거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지속적인 단가 인하 35.2% △물량 축소 29.9% △대금결제 지연 22.7% △제품 불량 원인 전가 7.7% 등이 주로 꼽혔다. 다만 조사대상 위탁기업들의 현금 및 어음대체 결제 비율이 92.8%로 지난해(87.9%)보다 상승해, 불합리한 어음 지급 관행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또다른 심각한 문제는 구두계약으로 납품을 받는다든지 하는 전근대적 계약 관행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중기청이 지난 10∼11월 대·중견기업 500곳과 납품업체 1287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 납품업체 중 127곳(9.9%)이 일부 계약 때 아예 서면 계약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65곳(12.8%)은 필수기재 사항들을 빠뜨린 계약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래의 출발점인 계약서에서 법령 위반 행위가 생기면, 이후 부당 단가 인하나 거래 중단 같은 또다른 불공정 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청은 이번 조사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가 드러난 위탁회사 199곳에게 이달 말까지 시정 조처를 내릴 방침이다. 조처에 따르지 않은 기업은 누적 벌점에 따라 공공입찰 참가 제한 등의 불이익을 주고, 언론에 해당 기업 이름을 공표할 계획이다. 김성섭 중소기업청 기업협력팀장은 “납품대금 지급과 관련해 법을 어기는 대·중견기업들은 크게 줄었지만, 불완전한 계약서를 쓰거나 물품수령증을 주지 않는 관행은 여전한 실정”이라며 “기초적인 거래 관행만 바꿔도 불공정 행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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