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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3 22:24 수정 : 2005.04.13 22:24


고액연체자등 100만 ~ 150만명 사실상 파산

개인파산 활성화대책 · 전문법정 설립등 제안

“파산하지 말고 더 노력하세요. 취하하세요.”


40대 중반의 주부 김아무개씨는 지난달 파산 법정에서 받은 좌절감과 허탈감으로 살아갈 의욕마저 잃었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자 남편 몰래 신용카드로 돈을 마련해 사업자금을 댔던 김씨는, 사채와 친척 돈까지 끌어쓴 뒤 돌려막기로 버티다 결국 2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돼 파산 신청을 했다. 현재 뚜렷한 수입원이 없는 김씨에게 2억원은 산더미 같은 금액이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의 파산을 받아주지 않고 개인회생을 알아보라며 취하를 요구했다.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의 마지막 비상구로 여겨지는 개인파산 제도가 겉돌고 있다. 최근 개인파산 신청이 늘고는 있지만, 파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실직 등 지나친 불이익으로 파산 대상자 수에 견줘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개인파산을 담당하는 법원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파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정부도 법원에만 맡긴 채 남의 일인 양 팔짱만 끼고 있다.

정부 대책, 고액 연체자에게는 ‘남의 일’=그동안 정부와 금융권은 개인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공동추심 프로그램 등 갖가지 신용회복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 대책은 극빈층 구제와 1천만원 이하 소액 연체자에게만 도움이 됐을 뿐, 평생 벌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고액 연체자에게는 별 혜택이 없는 것들이다. 지난해 정부 조사 결과 370만 신용불량자의 평균 부채는 4천만원을 넘었고, 전체의 35%에 이르는 131만명의 채무가 2천만원을 넘었다.

김남근 변호사는 13일 “신용불량자 가운데 100만명에서 150만명 정도는 평생 빚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상 파산자”라며 “이들에게 원금 감면이 없는 정부와 금융권의 대책은 사실상 효과가 없어 개인파산을 적극 활용해야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조그만 가게나 사업을 하는 자영업 신용불량자의 경우 대부분 구조조정이 예정된 한계업종 종사자여서, 개인 파산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이헌욱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파산 위기에 놓인 고액 채무자 문제 해결을 중심에 놓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파산, 연간 10만건 이상 나와야”=이처럼 개인파산 등 법원의 ‘공적 채무조정’ 활성화가 절실한데도 실제 파산 신청자 수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법원의 승인율은 높은 편이지만, 파산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와 징벌적 파산제도 때문에 신청자들이 기피하면서 신청 건수는 지난해 1만2천건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파산을 할 경우 사실상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등 불이익이 지나친 점이 파산 신청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 파산 신청 자체가 법률적 절차이다 보니 까다롭고 복잡한 서류 준비 등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도와줄 정부기구나 민간단체가 부족한 점도 파산 신청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오명근 변호사는 “의사나 경비원이 파산한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과거 파산을 죄악시하는 풍토에서 만들어진 자격박탈 등 문제조항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게 문제”라며 “우리 사회·경제 전체의 관점에서도 이들의 정상생활 복귀는 도움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경제적 효용성을 이유로 파산제도를 대폭 활성화하고 있다. 사실상 파산상태인 사람을 방치하면 이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해 내수가 침체되는 등 경제적 악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은 어려워질 경우 없애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각종 사회보장 비용과 범죄 발생에 따른 사회적 방어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사회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설로 자리잡았다. 파산에 따른 자격박탈 등 징벌적 조항도 일찌감치 폐기처분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도움을 받아 미국의 경우 개인파산 신청 건수가 연간 100만건, 일본도 한해 20만건을 넘는다. 김남근 변호사는 “굳이 미국이나 일본과 견주지 않아도 연간 10만~20만건 정도의 개인파산 신청이 이뤄져야 우리 사회 전반의 신용경색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홍보, 파산부 전문화 등 시급=이에 따라 개인파산에 대한 정부의 홍보와 파산법 개정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헌욱 변호사는 “정부는 사실상 파산상태인 사람을 개인파산으로 유도하는 적극적 홍보와 함께 이들에 대한 법률지원 서비스를 좀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도 파산 활성화를 위해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파산부를 민사부나 형사부와는 다른 전문 법정으로 분류해 좀더 전문성을 갖춘 판사진으로 구성하고, 파산부의 배정 방식을 순환근무식이 아닌 전문 재판부로서 장기간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개인파산 전문 변호사는 “민사나 형사부의 경우 돈 빌려 안 갚으면 사기죄로 처벌해야 하지만, 파산부는 원금 감면 등 면책을 해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며 “신청자 개개인의 사정과 함께 경제정책 전반을 통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주부 김씨의 사례에 대해 “사실상 파산 상태로 볼 수 있는 사안인데도 법원이 파산 신청에 지나치게 엄격하다 보니 좌절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또 법원이 큰 사업을 했던 사람이나 서울대 출신 등 고학력자에게 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6s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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