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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펀드 전격 세무조사 |
2개 대형펀드 포함…국세청 “부당이득 검증 필요”
정부가 외국계 자본에 대해 엄격한 태도로 돌아섰다. 최근 금융기관의 외국인 이사 수 제한과 5% 규정 개정 등을 둘러싸고 일부 외국언론과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외국계 펀드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든 것이다. 국세청 한상률 조사국장은 14일 “국제자본도 변칙적이고 부당한 이익이 있는지를 국제적 과세기준에 따라 명백히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국세청 입장”이라며,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가 이런 자세를 취하게 된 배경에는 외국자본에 대해 더는 특별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자클럽 조찬강연’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원칙을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 것은 국내외 자본 구분 없이 엄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외자 유치에 나라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각종 유인책을 내걸고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나라경제도 어느정도 정상화됐기 때문에 외국자본과의 관계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사실 2~3년 전부터 이런 문제인식을 가지고 외국자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투자한 외국자본들이 최근 이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막대한 차익을 챙긴다는 점이 부각된 것도 정부가 외국자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게 만든 요인이다. 제일은행을 매각해 1조1500억원의 차익을 남긴 뉴브리지캐피탈이나 진로 매각 과정에서 1조원이 넘는 차익이 예상되는 골드만삭스의 경우에서 보듯, 외환위기 이후 국내시장은 사실상 외국자본의 노다지판이었다.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외국자본이 아무런 세금 부담 없이 막대한 차익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이중과세 방지협정의 개정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국계 펀드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외국자본들은 국내 제도를 국제기준에 맞게 고치라고 집요하게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특별대우 받기를 요구하는 행태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최근 금융기관의 외국인 이사 수 제한과 5% 규정(주식 5% 이상 보유시 자금출처 등을 밝히는 제도) 개정 등에 대한 시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이 자칫 외국자본의 철수로 이어지지 않을지 하는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달 초 전면적인 시장 개방을 뜻하는 ‘선진 통상국’을 경영전략으로 내세운 정부가 한편으로 이렇게 외국자본에 강경대응을 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외국자본에 대해 이렇게 갑자기 엄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외국자본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해 시정하면 되지 일제 세무조사 같은 이벤트성 행정을 하는 것은 대외 신뢰도를 잃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이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내놓고 거부감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태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강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국제기준에 맞춰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5% 룰이나 외국펀드 세무조사 등은 관련 규정에 따라 하는 것이지 외국자본을 차별하기 위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외국자본들도 이런 점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 분위기 위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식시장도 종합주가지수가 27.39나 떨어졌지만 외국계 펀드 세무조사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방향 선회가 외국자본에 대해 차별적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게 아니고 그동안 다소 느슨했던 외국자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것”이라며 “개방경제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한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석구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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