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칼럼
일개 지자체장에 불과한 일본 도쿄도지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비판에 대해 ‘정치가로서는 3류수법’ 운운한다.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세상은 내가 분노하는 일에 곧장 감정선을 맞춰줄 만큼 물렁하지 않다. “지각 있는 일본의 지식인이 저렇게 얘기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국제 여론의 한 축인 모양인데,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순수한 민족주의적 열의는 그래서 자못 처연하다.
일본이 오늘날 이런 국제적 성가를 얻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것 가운데, 1854년 개항 이후의 대응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구의 앞선 문명 앞에서 일본은 일순 당황했지만 곧 유럽과 미국에 사람을 보내 세상이 돌아가는 꼴과 그 속에서 일본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파악했고, 망설이지 않고 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우습게 개항당했던 일본은 그 민첩성으로 인해 서양 열강의 주목을 받았고, 오래지 않아 러시아의 동점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하게 힘을 키워줄 수밖에 없는 ‘아시아의 파트너’로 격상됐다. 그리고 그 사정은 지금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인식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착각이다. 조선은 당시 무엇을 인식하지 못했고, 무엇을 착각했을까?
한국은 기본적으로 인력 초과 공급 시장이다. 가뜩이나 사람은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구인공고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다. 그러나 다만 그렇게만 알고 있다면 시장의 규칙을 너무 피상적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더구나 옆동네 기업이 그렇듯이 우리에게도 사람들이, 인재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많고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이를 해결할 인재는 찾기 어렵다.
헤드헌터는 기업의 요구를 받아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이다. 험하게 얘기하면 기업의 채용업무를 대행하는 아웃소싱 업무 수행자인 셈이고, 갑과 을의 관계로 따지면 헤드헌터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에게는 분명 ‘을’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넓고 서치펌은 많으니 사실 내가 돈을 줄 능력만 있다면 헤드헌터는 언제라도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드헌터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인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더구나 인재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헤드헌터가 기업의 인사팀보다 인재 찾기에 소질을 보이는 이유는 기업의 인력 수요와 인재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관로 중의 하나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또 그렇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역할이란 스스로 자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인 인증과정이 필요하다. 인력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는 헤드헌터를 중심으로 모이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헤드헌터라는 전문가에게 해설을 요구한다. 마치 주식시장 전문가에게 이번주의 주가 동향을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손에 쥔 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그 매력을 극대화시켜 투자를 유치할 수는 있지만, 투자자와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이 아니라면 확신할 수 없는 투자처에, 더구나 정크 등급에 가까워 보이는 곳에 돈을 넣으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헤드헌터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만, 동시에 인재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기업이고, 연봉 수준도 높고, 복지 혜택도 괜찮은 편인데도 유독 인재들이 못 버티고 계속 떠나는 기업들이 있다. 처음 한두 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헤드헌터도 그렇지만, 내부 직원도, 내부 직원의 친구들도, 옆기업 동료들도, 다른 산업의 파트너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떠난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떠난 사람의 개인적 브랜드 신뢰도보다 기업이 갖고 있는 공적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사람들은 서서히 한 가지 가능성을 덧붙이기 시작한다. “저 기업 혹시 이상한 것 아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눈을 뭉쳐봐서 알겠지만 부스러지지 않는 ‘핵’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이것이 한번 형성되면 살이야 금방 붙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문은 금세 전해지고, 구하기 어려운 인재들은 설혹 헤드헌터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더라도 주변 지인들로부터 기업 평판을 들어보고 “그 기업이라면 안 갑니다”라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나한테 그런 기업을 추천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그 기업이 헤드헌터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인재 공급이 끊긴 기업에게 미래는 없다.
야속한 것은 ‘누가 너를 짝사랑한다’든지, ‘사실은 너 왕따’라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비즈니스가 아니기도 하지만, 정보의 불균형에 바탕해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세상의 오랜 규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혹 착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빠져 나와야 할 때를 놓치면, 그 결과는 무척 쓰다. 그것이 후보자이든, 기업이든지 말이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리서치센터장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