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5 17:54
수정 : 2005.04.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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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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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진로 매각은 하이트맥주가 우선 협상 대상자로 결정되면서 한 고비를 넘어서게 됐다. 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는 이 과정에서 1조원대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두게 됐다. 하지만 지난 4일, 골드만삭스 리서치부서는 하이트맥주의 낙찰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뜻밖의 보고서를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외국계 자본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진로 매각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234호와 236호에서 상세하게 다뤄져 있다.
아시아 M&A시장의 최대 매물이라는 찬사를 받던 진로 매각에선 3조1600억원의 인수 가격을 제시한 하이트맥주가 우선 협상 대상자로 결정됐다. 10곳에 달하는 컨소시엄이 뛰어든 입찰 전쟁에서 최종 승자의 자리에 한발짝 가까이 서게 된 것이다.
진로 매각과정은 내내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린 외국계 자본의 행태를 둘러싼 논란이다. 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의 움직임은 특히 주목을 끌었다. 골드만삭스는 하이트맥주가 제시한 인수 가격대로 진로 매각이 최종 결정될 경우, 무려 1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 지난 1997년 진로 채권을 2740억원에 사들인 뒤 300%가 넘는 수익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골드만삭스가 진로 매각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 대해선 외국계 자본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협상 대상자 결정 이후 그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이런 논란을 더욱 부채질한 게 바로 지난 4일 공개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다.
“낙찰가 너무 높다” 속 보이는 보고서 발표
이 날, 골드만삭스의 리서치부서는 뜻밖의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하이트맥주의 낙찰가가 지나치게 높다"며 하이트맥주의 투자 의견을 '시장수익률'에서 '시장수익률 하회'로 하향 조정했다. 진로 매각을 위한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줄곧 매각가치를 부풀려오다 실제로 우선 협상 대상자가 결정되고 나서는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며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골드만삭스 입장에서 본다면, 그간 진로의 매각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려왔다는 세간의 지적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진로 매각가치와 관련된 그간의 스토리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지난 3월, 진로의 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로의 매각가치를 슬쩍 흘린 바 있다. 골드만삭스가 공개한 진로의 매각가치는 3조6천억원. 이는 그 무렵 시장에서 평가하던 예상 가격보다 1조원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지난해 4월 2조4천억원을 적정 가격으로 제시한 바 있는 골드만삭스로서는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무려 1조2천억원을 올린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진로의 정리계획안 확정시 외부 감사인이었던 삼정회계법인은 진로 매각가치를 1조8천억원으로 평가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가 본격적인 진로 몸값 부풀리기에 나서기 앞서 영국의 유력 금융 전문지인
는 2004년 채무조정상 수상기업으로 진로를 선정하며 골드만삭스의 '작전'을 거들기도 했다. 당시 는 진로 적정가치에 대해 처음으로 3조원대를 거론했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볼 때, 지난 4일 공개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골드만삭스측은 "진로 채권을 사들인 채권부서와 보고서를 작성한 리서치부서가 분리되어 있어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히고 나섰다. 골드만삭스의 국내 홍보대행사인 에델만 관계자는 "부서 간의 내부정보가 엄격하게 차단되어 있는 외국계 투자기관에서 부서 간에 같은 의견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며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투자부서에서 관련 내용을 반박하고 나선 것도 이처럼 부서 간 정보 교류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보고서를 발표한 배경과 그 시기에 대해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법정관리 당시 진로측 변호를 맡았던 이대순 법무법인 정민 변호사는 "하이트맥주가 막상 뚜껑을 열고 진로를 실사하는 과정에서 당초 예상했던 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적정 가격에 대한 논란이 다시 한번 불거질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해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로서 리서치부서에서 매각 가격을 낮게 평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간 줄기차게 인수 가격 띄우기에 앞장서온 골드만삭스가 입찰이 끝나자마자 '딴소리'를 내놓는 것은 외국계 자본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하이트맥주의 주가는 지난 4월1일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이후 8일 기준으로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했을 경우 얻게 될 실익보다는 당장에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시장에 먼저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피해 고스란히 진로 구성원에게 돌아가
또 다른 문제도 남아 있다. 매각 가격이 부풀려졌을 경우 인수자의 부담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이에 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진로 구성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만큼 커지는 셈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한 만큼 인수 직후부터 조직의 슬림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할 공산이 큰 탓이다. 하이트맥주 역시 고용 승계에 대해선 분명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비록 진로 직원들의 고용을 100% 승계하기로는 했지만, 이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인지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껏 구체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진로 매각과정에서 진로 노조가 줄기차게 "외국계 금융기관이 매각가치를 부풀려 매각시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이번 진로 매각과정을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곳은 외국계 자본들"이라며, "이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투자가들의 기업가치 부풀리기에 의해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적정한 기업가치 수준에서 M&A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연기/ <오마이뉴스> 기자 ykkim@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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