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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03 23:03 수정 : 2008.02.03 23:03

인수위 ‘규제완화 통한 인하방안’ 뜯어보니
‘피부 와닿는 인하’ 외치다 “업계 자율” 주저앉아
요금인가제 폐지·의무약정제 도입 등 실효성 의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3일 내놓은 ‘통신요금 인하 방안’은 통신요금을 내리겠다는 게 아니라 통신요금 인하를 포기한 쪽에 가깝다. ‘업계 자율’이란 명분을 달아, “소비자가 통신업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피부에 와닿는 수준’의 요금인하를 외치던 의지를 스스로 꺾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수위는 이날 “이동통신 업체들이 따라주지 않아 휴대전화 기본료와 가입비는 손댈 수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인수위는 “대신 규제 완화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국민 피부에 와닿는 요금인하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 새 정부에 넘겨주겠다”고 밝혔다.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휴대전화 재판매(MVNO) 제도 도입, 의무약정제 도입, 단말기 잠금장치 해제 등을 통해 통신업체들이 스스로 요금을 내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1~2년 안에 20% 이상의 요금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휴대전화 요금인하 운동을 펴온 시민단체 쪽은 물론이고 통신업계 내부에서도 ‘규제 완화를 통한 요금인하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수위는 통신요금 인가제 때문에 요금을 내리지 못했다는 선발 통신업체들의 주장에 따라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요금을 내릴 생각이 없으면서 핑계만 그렇게 대 왔고, 기회만 있으면 요금 짬짜미를 하고 꼼수를 부린 그동안 행태로 볼 때 실제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특정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더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더욱 좁아질 위험도 있다.

선두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은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해 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해주면 장기 가입자의 망내(가입자간) 통화료 할인폭을 지금의 50%에서 70%로 늘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이 망내 통화료 할인폭을 키워봤자 그 수혜자는 전체 가입자의 8%도 안 된다. 망내 통화료 할인 요금제 이용자가 그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업체는 장기 가입자의 망내 통화료 할인폭을 늘리는 대신, ‘중복 할인 불가’란 이유로 평균 할인폭이 국내 통화료의 8.5%에 이르던 장기가입 할인 혜택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얹는 격이다. 국내 통화량 가운데 망내 통화 비중이 52%인 점을 고려하면, 망내 통화료 할인폭을 20%포인트 늘려도 장기가입 할인을 없애면 요금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동통신 재판매제 또한 이미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도입되는 것이라 재판매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유럽이 이동통신 재판매제 도입으로 요금인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 포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돼 재판매 사업자들이 다양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신업체가 가입자에게 단말기 보조금을 주는 대신 서비스를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의무약정제’ 역시 이동통신 업체들한테만 요금인하 여력을 키워줄 뿐 소비자들에게 돌아올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업체들의 여력이 커지는 이유는, 의무약정제가 도입되면 장기 가입자 비중의 증가로 보조금 경쟁이 그만큼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이번 안의 추진 전말을 보면 인수위가 일부 통신업체의 논리에 빠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한 꼴”이라며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이용자와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정부까지도 통신요금 인하 내지 통신비 부담 완화 얘기를 꺼내기 어렵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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