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터지는 미국·중국 ‘쌍끌이 악재’ 여파 커
금융시장 불안도…“70년대보다 더깊고 길수도” 새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고 있다. 경기는 꺼지고 물가는 크게 오르는 1970년대 중후반의 악몽이 지금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잇따라 터지는 미국과 중국발 쌍끌이 악재는 이미 경기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물가 불안까지 닥친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 힘 잃은 경기에 외부 충격=경기와 물가 모두 갈수록 심상찮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9%로, 2004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상승 속도다. 지난해 9월 2.3%였던 물가 상승률은 넉 달 사이 무려 1.6%포인트나 급등했다. 경기지표는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략 6개월 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11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소비재 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9월(8.5%)을 정점으로 완만한 내림세이다가 12월엔 2.6%로 낙폭이 더 커졌다. 게다가 우리 경제 성장의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힘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월 중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수출액은 13억7천만달러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에서 잇따라 터진 악재는 우리 경제에 어려움을 더해줄 전망이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2일(현지시각) 1월 중 비농업부문 고용자 수가 1만7천여명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비농업 부문 일자리 수가 줄어든 것은 2003년 8월 이후 4년5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1월 마지막주 실업수당 청구자 수는 6만9천명으로, 시장 예상치 세 배를 웃돌았다. 이런 미국의 고용지표 발표로, ‘둔화’와 ‘침체’로 엇갈리던 미국 경기 논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중국에선 때마침 닥친 폭설 탓에 물가가 더 오르고 경제 성장세도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공상은행은 이번 폭설로 1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 만의 최고치인 7%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또 동방증권은 1분기 성장률이 10%를 밑돌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영향에서 자유롭긴 힘들 것”이라며 “물가 부담이 커진데다 어렵사리 버티던 경기마저 힘을 잃고 있어 우리 경제도 점차 힘겨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 70년대보다 더 깊고 길수도=전문가들은 이번에 세계 경제에 또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온다면 그 강도와 기간은 이전보다 더 세고 길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세계 경제 환경이 70년대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60년대 누렸던 경제호황의 종말과 산유국의 담합이라는 일시적 사건에서 비롯됐지만, 이번 상황은 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사라지자 저금리 체제와 위험자산 선호가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자산거품이 마침내 꺼지는 과정의 산물”이라며, “이 때문에 금융시장의 불안정마저 더해져 경제 침체의 여파가 더 깊고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각국 정책당국의 선택지가 더 좁아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금리 수준을 더 올려야하지만, 이렇게 되면 힘을 잃은 경기를 더욱 가라앉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준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소비를 펑펑 늘리고 아시아는 그 덕에 수출로 먹고사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소비-고성장 거품경제가 빠르게 붕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당분간 조정기간에 어려움을 피하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우리 경제는 거품을 빼는 데 주력해 기본 체질을 다져나가는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 한국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속으로
▶ ‘지표 빨간불’ 시름 깊어가는 이명박 당선인
▶ 장보기가 겁나요…‘생활경제 고통지수’ 급등
▶ 서브프라임 ‘빚잔치’의 비극
▶ ‘눈폭탄’ 맞은 중국경제 당분간 ‘모로 걸음’
▶ [한겨레21] 미국 제조 ‘글로벌 금융위기 폭탄’ 돌리기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