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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중소기업 ‘투톱 경영’ 자리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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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시너지효과’ 기대 공동·각자대표 체제 늘어
대주주 전문경영인 변신도…“경영권 다툼 번질 수도”
중소·벤처기업 경영체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인수합병이 활발해지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창업자=1대 주주=대표이사’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대표나 각자대표 형식의 ‘투톱 체제’를 선택한 기업들이 많아졌고, 최대 주주가 지분을 판 뒤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최근 붙박이(임베디드)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엠디에스(MDS)의 경영체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창업자인 김현철 전 사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앉은 대신 부사장이던 이상헌씨와 최근 합병한 디에스티의 나기철 전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은 것이다. 이 사장은 “각자대표가 의사결정은 빠르지만, ‘통합’의 극대화를 위해 공동대표 형식을 취했다”며 “소유-경영이 분리된 시스템경영을 도입하고 1대 주주는 기술개발에 전력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인수합병으로 피인수된 기업의 최대 주주는 자기 지분을 팔아 이른바 ‘이익실현’을 한 뒤 회사를 떠나는 게 상례지만, 나 사장은 엠디에스의 지분을 받아 이 회사의 2대 주주가 됐다.
나우콤과 사이버패스 등도 최근 한달여 사이에 인수합병과 맞물려 공동대표나 각자대표 체제로 바뀐 곳이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와 대모엔지니어링처럼 전문경영인과 최대 주주가 공동경영에 나서는 회사도 많다. 게임업체인 위메이드는 지난해 3월 서수길 전 액토즈소프트 사장이 경영일반을 맡고, 창업자인 박관호 전 대표는 개발본부장을 맡는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서 대표는 “위메이드는 중국 진출 뒤 현지업체 ‘샨다’와 4년여간에 걸친 소송 등 지적재산권 문제로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며 “표절·기술유출 시도에 대한 대응과 시간·돈·사람 관리는 내가 맡고, 개발자 출신인 박 대표는 본인의 강점에 주력한다”고 말했다.
창업자이던 대주주가 지분을 판 뒤 전문경영인 또는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변신한 사례도 적지 않다. 반도체설계회사인 코아로직의 황기수 사장과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의 고범규 사장, 엠피3플레이어로 유명한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김화수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김 사장은 “엠앤에이에 따른 인력유출 등 리스크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합병 조건으로 창업자의 대표이사직 유지를 내걸기도 한다”고 풀이했다.
중기·벤처들의 다양한 경영권 창출 실험은 기업 성장단계에 따른 필연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 게임업체 넥슨 등 국내 대표적 벤처기업들은 인수합병이나 상장 등의 과정을 거치며 경영시스템 실험을 반복해 왔다. 경영권이 변할 때마다 회사 쪽은 “경영 효율성과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해 왔다.
문제는 이런 공동대표나 각자대표 형태의 지속성 여부다. 특히 우회상장을 한 기업에서는 2명 이상의 대표이사를 일시적으로 선임하기도 한다. 대표이사를 맡은 전문경영인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완전히 넘길지도 미지수다. 실제로 지난 연말 합병된 지오텔과 카포인트의 통합법인은 이봉형 카포인트 사장과 이종민 지오텔 사장이 공동대표로 회사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종민 사장이 두달여 만에 사임했다. 대기업 계열 소프트웨어 업체의 한 전문경영인은 “이사회나 전문경영 체제가 형식적이어서 오너가 전권을 휘두르는 ‘무늬만 전문경영’이 부지기수”라고 털어놓았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백필규 연구위원은 “공동경영이나 각자경영은 분야별 책임경영과 합병 시너지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전문경영 체제에서는 소유-경영 분리에 따른 투명한 의사결정이 장점”이라며 “그러나 벤처캐피털 등 외부자본이 투자금 환수를 위해 우회상장을 추진하며 공동경영이 된 경우 나중에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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