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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전 과천 정부청사에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오른쪽), 임채진 검찰총장(왼쪽 두번째) 등 참석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다. 과천/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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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맞는 ‘이명박식’ 물가 관리
물량 수급 조절한다지만 사실상 가격 통제 우려
환율 상승 외면…미봉책, 시장에 잘못된 신호만
생활필수품 50개 품목의 가격을 집중관리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일 기획재정부가 관리대상 품목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관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이다. 기업들은 어떤 품목이 대상에 들어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품목을 정해놓고 가격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의 가격통제라며, 그 부작용을 걱정한다.
■ 가격통제 부활 논란=이 대통령은 19일에도 생필품 가격 안정을 두 차례나 강조했다. 그러나 ‘개발독재 시대 물가관리’의 부활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정부가 나서서 값을 묶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는 기초생활 품목은 굉장히 싸다. 우리는 비싸니까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업들에게 (값을) 내려라 하는 게 아니고 물량 수급을 통해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가격통제는 전 근대적인 방법이라고 이미 대통령도 말씀하셨다”고 강조하며, “유통구조 개선 등이 포함된 물가관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정부가 시장에 가격과 수급 정보를 제공하고, 시장의 병목을 뚫어주는 식의 시장친화적인 물가관리 방식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주유소의 석유류 판매가격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해 주유소들끼리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값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50개 품목 고를 이유 있나?=기업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정부가 미리 50개 품목을 정해두고 값을 관리한다는 점 때문이다. 시장친화적인 물가관리 대책이라면 적절한 개선책이 있는 품목부터 하나씩 실행에 옮겨가는 게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최근 생필품 가격이 크게 오른 이유가 국내 수급 문제 탓이 아니라,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한 탓이 크다는 점도 대통령의 물가대책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기업들은 정부가 품목을 정해두고 관리할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압력이 될 수 있다며, 어떤 품목이 관리대상에 선정되는지를 보면 이 대통령의 뜻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실효성 없고 부작용 클 것”=기업들에 가격 인상을 억제하도록 압력을 넣으면 수치로 나타나는 물가 상승률은 조금 낮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관리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 기업들이 값을 미리 올려버릴 수도 있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다른 상품의 가격을 올려 손실을 보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 요인이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값이 크게 오를 수도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산물 생산자들은 어려움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급등한 물가를 더 크게 끌어올릴 것이 뻔한 환율 상승에 대해서는 눈감으면서, 생필품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는 “물가를 인위적으로 억제했던 나라들은 대체로 실패했다. 유류세 인하 같은 미봉책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며 “시장원리대로 하겠다고 해놓고 시장을 거스르는 전형적인 인기영합 정책이며, ‘50가지 생필품 관리’는 박정희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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