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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볼텍의 임성근 대표가 볼트 머리에 글씨를 새기는 ‘볼트마킹’이 끝난 완성품을 가리키고 있다. 임 대표는 “볼트마킹을 제대로 하는 업체가 국내에서도 3~4곳뿐”이라며 “중국산을 이기려면 섬세한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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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볼텍, 볼트·너트 숙련 생산 1인당 연매출 2억
태림산업, 지엠등 고급차 독보적 ‘업그레이드 용접’
‘소리없이 강하다’는 표현은 전통제조업 분야의 ‘강소기업’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단조, 용접, 금형, 사출 등 기술혁신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인도의 업체들이 낮은 원가와 풍부한 노동력을 자랑한다면, 태림산업, 신진볼텍 등 국내 산업계의 ‘숨은 강자들’은 기술 특화, 국외 마케팅, 숙련 기능인력의 힘을 무기로 삼고 있다.
경남 창원시 팔룡동에 위치한 신진볼텍은 볼트와 너트를 생산한다. 한때 기계산업의 메카인 창원의 특산품이었지만 이제는 중국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한 기초부품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임성근 신진볼텍 대표는 “볼트, 너트 하면 로테크(저급 기술)처럼 보이지만 원가절감과 틈새시장 개척 노력만 지속하면 블루오션으로 만들 수 있다”며 “사업부별 월 결산 손익을 공개해 투명하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려 애쓴다”고 말한다.
이 회사의 생산현장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섬세한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너트와 체인은 구멍에 이물질이 남으면 불량품으로 취급되는데, 손으로 하던 분류작업을 자동 선별기로 대체한 것도 그중 하나다. “물레방아에서 너트를 ‘퍼내는’ 장치를 고안했다”는 유인기(66) 반장은 “사내제안상, 원가절감상 등 포상제도 덕분에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고 설명했다. 스테인리스 너트, 티타늄 너트 등 까다로운 단조(금속을 두드리거나 누르는 공정) 기술이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이 회사의 임직원은 20여명뿐이지만 지난해 5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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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산업의 오창욱 부장이 ‘랙튜브’라고 부르는 자동차 조향장치 관련 유압 실린더를 보여주고 있다. 태림은 파이프 안쪽에 변형이 가지 않도록 용접하는 생산기술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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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산업단지에 있는 태림산업은 ‘업그레이드’된 용접기술을 바탕으로 베엠베·지엠·포드 등의 고급차종에 조향장치 관련 부품을 공급한다. 자동차는 방향 조정이 쉽도록 유압실린더를 활용하는데, 파이프와 부속물이 제대로 결합되지 않으면 핸들이 빡빡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태림은 파이프와 부속물을 고무로 감는 대신 용접을 하는데, 용접열이 가해져도 100분의 1~2㎜ 오차를 벗어나지 않게 가공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연간 150억원 안팎의 수출 실적을 자랑한다. 오승한 태림산업 사장은 “첨단 가공기계는 사오면 그만이지만 용접 등의 노하우는 중국·인도 등이 쉽게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며 “외국인 인력 도입은 최대한 억제하는 대신 손재주 좋은 퇴직자와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국내 중소기업계 전체를 돌아보면 전통업종에서 비범한 성과를 내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플라스틱 버클 세계 1위인 우진프라스틱은 스포츠용품 업체들에게 버클 수납장을 설치해주는 ‘찾아가는 마케팅’을, 삼성전자가 벤치마킹한 스프링 제조업체 삼원정공은 전직원을 대상으로 한 1초 단위 시간관리를 바탕으로 사양산업임에도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자랑한다. 또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 등을 생산하는 재영솔루텍은 일본 업체들도 시도하지 못한 금형기술의 매뉴얼화를 추구하는 등 ‘지식경영’으로 유명하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로테크를 첨단기술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국내 중소기업들도 기술·인력 관리를 체계화하는 경영혁신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원/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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