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6 22:36
수정 : 2008.03.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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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거시정책 관련 발언들과 시장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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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물가 시급”…강만수 재정 “성장·물가 순위무관”
환율 25일 20원 급락뒤 하룻만에 10원 급등 롤러코스터
기업 환차손 속출…채권딜러 “말이 많고 방향까지 달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핵심 정책 당국자들의 말이 엇박자를 내면서 그때마다 원-달러 환율과 시중금리가 급등락하는 등 금융·외환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86.80원으로 전날보다 10.5원이나 올랐다. 전날 20.9원 급락했다가 하룻만에 급등하는 ‘롤러코스트’ 장세를 보인 것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전날 저녁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시 성장론을 펴면서 환율 상승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한 채권시장 딜러는 “시장이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요즘엔 말에 따라 움직인다. 오럴(말)이 많은데다, 더 큰 문제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당국자들의 ‘말’에 따라 시장이 요동치는 현상은 새 정부 출범 뒤 계속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강 장관은 취임 직후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원화 강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환율정책과 상치되는 측면이 있으며, 정부가 환율정책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당 900원대 초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한때 1030원선까지 찍었다. 국제 원자재값과 곡물값이 치솟는데 환율마저 급등해 물가관리에 비상등이 켜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를 잡으라고 다그쳤다. 시장은 무게중심이 안정 쪽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물가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해진 상황”이라며 안정론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사흘 뒤인 25일 강 장관은 “7% 성장 능력과 물가는 우선순위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며 다른 해석을 했다. 맥락으로 보아 다시 성장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이 때문에 26일 환율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외환·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상황에 따라, 말하는 사람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니 앞으로 또 어찌 될지 알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성장과 안정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내용도 달라진다. 경제 주체들은 정책 방향을 보고 앞날을 예측하고 움직인다. 시장 움직임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최근 일주일간 이 대통령, 강 장관, 거기다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까지, 말이 바뀔 때마다 환율과 금리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장 참여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갑자기 급등락한 환율 탓에 수많은 기업들이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큰 정책 방향이 갈피를 잡지 못하니 세부 정책 역시 일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물가정책의 경우 처음에는 과거식 가격규제를 동원할 듯하다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시장친화적’으로 한다고 물러섰다. 서민 물가 안정은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나, 대통령이 느닷없이 생활필수품 50품목을 얘기하니 거기에 맞추느라 정부 부처들은 허둥댔다. 석유값 정책에서도, 유류세를 10% 내렸지만 정부 안에서도 실패한 대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25일 52품목 물가대책을 발표하면서 덧붙인 경제현황 설명에서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에너지 수입액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류세 인하는 거꾸로 간 셈이다.
이런 정책 혼선을 두고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가치를 잡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강만수 장관은 여러 차례 통화정책에 개입하는 발언을 했지만 금융시장에 혼란만 주고 여론의 뭇매를 자초했을 뿐”이라며, “계속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흔들고 정책 결정 시스템을 장악하려 한다면 사회단체와 연대해 전면적인 저항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병수 선임기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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