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9 21:06
수정 : 2008.04.10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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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전화번호 곧장 재사용 가입자 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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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체 ‘번호 넉넉치 않다’
‘에이징’ 기간 1개월 안팎 줄여
가입자 낯선 전화·폭언 시달려
직장인 김상국씨는 이동전화에 가입한 지 한 달도 안 돼 전화번호를 바꿨다. 돈 갚으라는 전화가 자꾸 걸려와서다.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견디다 못해 이동통신업체에 항의하자 “이전에 그 전화번호를 사용하던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 같다”며 전화번호를 바꾸도록 권했다.
통신업체들이 해지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회수한 뒤 다시 다른 가입자에게 부여할 때까지 일정 기간 이 번호의 사용을 중지시키는 ‘에이징’(속칭 ‘물빼기’) 기간을 줄여 가입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집전화나 이동전화를 개통하자마자 “야 잘 있었냐”는 식으로 반말을 하거나 “돈 갚으라”며 욕을 해대는 전화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이동통신업체들이 해지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또다른 가입자에게 너무 빨리 다시 부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통신업체들은 해지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회수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새 가입자에게 다시 부여하는데, 전화번호에서 이전 사용자의 ‘물’을 빼려면 적어도 1년 정도는 묵혀야 한다. 하지만 통신업체들은 고객들의 번호이동과 해지 등이 잦아지면서 사용가능한 전화번호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기간을 자꾸 줄이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 쪽은 “가입자들이 그냥 해지했느냐, 전화번호를 갖고 경쟁업체로 옮겨가 해지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해지 뒤 5~19일 정도가 지나면 전화번호가 다시 부여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케이티에프(KTF)와 엘지텔레콤(LGT)은 1~3개월 정도 묵힌다. 대신 전화번호 변경 안내 서비스를 받는 동안에는 재부여를 하지 않는다.
집전화의 물빼기 기간도 대부분 1개월 정도로 짧아졌다. 일부 지역은 더 짧기도 하다. 케이티(KT) 김철기 과장은 “업무 지침에 해지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회수한 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부여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서울 강남의 영동지점 관할 구역처럼 해지와 가입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더 짧은 기간에 다시 부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나로텔레콤 관계자는 “통상 3개월 정도 묵히는데 경기도 평택, 화성, 구리 지역에서는 그 안에 다시 부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기통신번호관리 세칙’에 따라 전화번호의 휴면(에이징) 기간을 통신업체 자율에 맡기고 있다. 통신업체 관계자들은 “여유 전화번호를 80% 이상 소진해야 추가로 방통위에 요청할 수 있다”며 “신규 가입자의 전화번호 선택 폭을 넓히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물빼기’가 덜 된 것까지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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