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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21 20:49 수정 : 2008.04.21 20:49

대형마트 PB납품 압력…‘속 끓는’ 중소업체

중소 납품업체 105개사 첫 실태조사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들이 자체브랜드(PB) 상품을 크게 늘리면서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어렵게 고유 상표를 키워 대형 마트에 입점해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다시 대형 마트의 피비 상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대형 마트들이 입접 업체들의 고유 상표 상품을 피비로 전환하거나 피비 상품 비중을 늘리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매장 리뉴얼 작업 때 입점 제조업체에 사원 파견을 요구하는 등 불공정 거래도 여전하다.

“납품단가 내려라” 33%
“다른 마트 거래금지” 34%
“판촉사원 파견 요구” 11%
대형마트 횡포 여전

브랜드 가진 제조업체
납품거부 불이익 공포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

21일 <한겨레>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 마트의 피비 상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105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고유 브랜드 육성 차단 및 다른 대형 마트와의 거래 금지’와 ‘지속적인 납품단가 인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각각 34.3%와 33.3%에 이르렀다. 또 대형마트의 ‘광고·판촉비·재고 등 비용 전가’나 ‘납품대금 결제 지연 및 감액 지급’으로 애를 먹는다는 응답도 각각 15.2%, 14.3%나 됐다. 또 열에 한 곳 이상(11.4%)은 아직도 ‘판촉사원 파견 등 부당한 요구’에 시달린다고 응답했다. 반면 애로 사항이 없다는 응답은 29.5%뿐이었다.

특히 대형 마트의 피비 확대에 따른 피해는 일차적으로 경쟁력 있는 고유 상표를 가진 제조업체들에 쏟아지고 있었다. 소비재를 만드는 ㄱ사의 김아무개 사장은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 업체라는 꼬리표를 떼고 브랜드를 살리려고 애써 왔는데, 대형 마트에서 2년여 전부터 집요하게 피비 납품을 강요했다”며 “계속 거부했다가는 판매대 위치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최근 납품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ㄴ사의 한 임원은 “우리 브랜드를 국내 공장과 중국 공장 두 곳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최근 한 대형 마트에서 중국 공장 제품을 피비로 공급하라고 강요해 다음달에 세 컨테이너 분량을 주기로 했다”며 “이렇게 생산비가 싼 중국산 제품의 피비 납품물량이 계속 증가하면 국내 제조업 공동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형 마트에서 파는 피비 상품이 외부 브랜드 상품보다 유통마진이 더 높다는 주장도 나왔다. 납품업체들이 밝히는 대형 마트 피비 상품의 판매 마진율은 30% 안팎이다. 100원에 납품받은 피비 상품일 경우 130원에 판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 브랜드 상품의 마진율보다 3%포인트 정도 높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음식료업체 ㄷ사의 김아무개 과장은 “피비는 1~2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고 반품이 없다지만, 신상품 개발과 디자인 비용을 제조업체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밑지는 장사”라고 말했다. 피해는 다시 소비자에게 떠넘겨진다. 전기 어댑터를 납품하는 한 전기업체 관계자는 “납품가에 맞추려다 보니 중국에서 값싼 제품을 수입한다”며 “수입 제품은 대부분 피복 안의 구리선 가닥을 줄이거나 재생품을 써 제조원가를 줄이기 때문에 제품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장 리뉴얼 작업에 납품업체 직원들이 동원되는 등 구태도 여전하다. 한 주방용품 제조사의 마케팅 담당 과장은 “회사 전직원이 15명뿐인데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매장 102곳이 리뉴얼할 때마다 나가야 한다”며 “어제도 지방에 다녀 왔는데 밤 11시에 들어가 물건 빼고, 다음날 아침 8시에 들어가 다섯시간 일하니 마트에서 8000원을 주더라”고 말했다. 명목상으론 계약서를 쓰고 일당을 받는 셈이지만, 실제 한번 출장에 차비·숙식비 등만 20만원 이상 든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운동용품을 공급하는 ㄹ산업의 신아무개 사장은 “지난번 설 때도 너희들은 매출규모로 봐서 1억원어치는 사줘야 한다고 상품권을 떠넘겼다”고 털어놓았다.

알버트 포어 미국 반독점학회 회장은 2006년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형 마트와 피비 거래를 하는 납품업체의 현실을 ‘주전자 속 개구리’에 빗대 설명했다. 개구리를 냄비 속에 넣고 약한 불로 서서히 끓이면 서서히 죽듯이, 대형 마트의 가격인하 경쟁에서 제조업체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로 7년째 대형 마트와 피비거래 중이라는 한 주방용품 업체 사장은 “6000원짜리 피비 제품의 포장지만 700원 정도 나간다”며 “피비가 정말 소비자에게 값싼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라면, 제조사들을 말려죽이는 대신 과도한 포장과 매장 장식비용을 줄이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주환 윤영미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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