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25 16:53
수정 : 2008.04.25 16:53
시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린 지 벌써 10분이 넘었는데 한 대도 안 온다.’고 푸념하는 중년신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오래전부터 지자체 자립도 전국순위에 꼽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근도시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도시의 발전은 인구의 증가와 비례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역 기업체 임원들 상당수가 인근도시에서 출퇴근 한다. 주말이면 중 고등학생들부터 일반인들까지 삼삼오오, 쇼핑이나 여가를 위해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 행사처럼 되어있고 대부분, 생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런 현실을 반증하듯 여전히 버스는 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비를 위한 시민편의 기반체계가 미흡하다는 말이다. 불편한 곳에서 편한 곳으로, 비싼 곳에서 저렴한 곳으로, 심심한 곳에서 재미난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 따라 돈도 간다.
대기업들이 대형마트 사업에 진출할 즈음, 곳곳에서 입점반대 시위와 격렬한 저항을 한 적이 있었다. 지역경제가 외부로 유출 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경제유출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의 견해로 경제유출과 도시 성장 동력의 부재라는 문제의 중심에는,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에 몰입하는 개인의 심리’와 ‘왜곡된 투자방법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한 가지씩 예를 들어보자. 먼저 지자체를 보자. 타산 안 맞는 대중교통은 애물단지다. 그래서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고유가시대에 생활반경이 축소되는 건 당연하다. 왕래가 없으면, 지역 상공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쉽게 만나는 문화 위에 소비가 있고 경제가 있다. 지자체의 몫은 계획이 아니라 장려에 있음을 잊은 지 오래다. 다음은 기업체를 보자. 경제개념이 확대되면서 산업과 금융의 경계가 모호 해졌다. 다국적기업과 규모의 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무리한 융자와 투자자 유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은 곧 돈이다.’ ‘물품재고는 곧 손실이다.’ ‘생산성 향상은 사활을 건 문제가 되었다.’ 그만큼, 근로자들의 소비할 시간과 경제적 여유마저 없어졌다. 누가 소비를 하고 누가 생산을 할 텐가? 무한경쟁에 눈먼 기업은 순환구조의 경제원리를 무시한지 오래다.
그렇게 보면, 이 도시의 문제는 곧, 이 사회의 문제였다. 역동적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국제환경에서 내수경제의 자립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비즈니스프렌들리’를 외치면서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와 증가하는 실업자는 소비시장의 그늘로 내 몰리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하잘것없는 소비시장이 오늘날 경제의 모태이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외국제품을 싸다고(물론, 품질이 나쁘면 싼 것이 아니다.) 환영하는 것은 주말쇼핑을 위해 인근대도시로 가는 중고생들보다 못한 행동이며, 장사를 처음 하는 초보자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그로인해, 거래처와 고객들과 신용을 잃는데서 그치는 것은 장사꾼의 얘기다. 앞으로 왜곡될 내수시장의 불균형과 산업구조의 획일화는 자체 균형 발전은커녕 경제 자생력의 괴멸을 불러온다.
지금 시간 일억의 세계인구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우리의 영원한 우방, 세계 초강대국은 명분 없는 전쟁에만 열을 올리며, 뒤처리마저 우리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언제까지?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유럽에서 외면 받는 미국산 곡물과 육류가 동아시아와 주변 약소국들로 향한지 오래다. 미국 의회가 한미FTA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으로부터 이미 낙제점을 받은 미국 농축산물 시장의 확대는 위기에 있는 자국 경제에 극약처방이라는 자체분석인 것이다. 약소국 국민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의 무력화는 미국 스스로의 부담을 늘리는 행위 일 수 있다는 거시적 포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아울러,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부가 되어주길 대한민국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권고한다. 우습게 보이는 10원짜리 문방구가 경제위기를 쉽게 넘은 비결에, 성가신 아이들을 감당한 주인의 인내가 숨어 있었음을 새겨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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