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 2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종근기자
|
지난 2월25일 장중 한때 종합주가지수가 1000.25포인트를 찍자 그 이후부턴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는 기대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양상이다. 채권시장이나 외환시장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속속 발표되는 요즘, 2분기 이후 시장의 흐름을 죄우할 변수들을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에선 그간 만성적인 한국 주식의 저평가가 이번엔 극복될 것이란 기대가 시장을 압도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3월10일을 제외하면 2월28일부터 3월14일까지 9영업일 동안 종합지수는 1000대에서 서성거리며 1000선이 이제 저항선이 될 것이란 기대까지 나온 바 있다. 반면 연초 이후 채권시장에선 고난의 나날들이 지속됐다. 채권시장에선 연초에 10년 만기 국고채 발행 물량 증가에 대한 우려와 경기 상승 기대감이란 ‘악재 요인’으로 연초 이후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1.20%포인트 급등해 4.50%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4월15일 현재 지표금리는 3.88%로 상승 폭의 절반 이상을 되돌려놓았다. 종합주가지수도 3월12일 1022.79까지 치솟았지만, 4월15일 현재 947.22를 기록하며 950선을 하회했다. 금융시장의 혼란스런 움직임은 이 시장의 변화무쌍함을 다시금 곱씹게 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역시 달러 약세기조 지속이라는 큰 그림에 따라 3월 초 들어 1천원선이 무너지면서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12일 1100원선이 무너진 뒤 3월10일 1000.2원, 11일 1000.3원, 12일 1000.7원 등 당국이 개입에 나서며 간신히 종가를 1천원 위로 올려놓는 모습이 목격됐다. 1천원 마지노선은 사수한다는 암묵적인 지령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외환시장 상황도 급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쌍둥이 적자 해소 등을 위해 불가피하다던 달러 약세 기조가 다소 수그러지며 환율도 4월15일 현재 1022.5원으로 다소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콜 금리 3.25% 하향 조정 기대감 사라져
이런 가운데 2분기 들어 금융시장에선 위기감이 조금씩 증폭되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현재 정책금리인 콜 금리 목표 수준을 현재 3.25%에서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이다. 기업경기실사지수와 같은 체감경기 지표가 크게 오른 가운데 기준 금리 인상만 남았다는 인식이 강조되기도 했다. 정책 당국은 ‘다소 강압적’이라는 인상까지 심어주면서 연초부터 경기 회복 기대감을 ‘주입’하고 있다. 물론 경기에 대한 심리가 호전되면 그 부분이 심리가 아닌 여타 실적지표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고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인지, 이번 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박승 한은 총재는 한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월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박승 한은 총재는 “경기심리 지표들이 모두 개선되고 있으나, 생산과 건설활동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경기회복세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일시 주춤하는 모습”이라며 지난 3월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태도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그는 또 채권시장이 우려했던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해서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히는 등 연초 대외금리 역전에 대해 우려했던 모습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지난주 채권시장은 이번 달 후반에 나올 산업활동 동향이 기대보다 나쁠 수 있다면서 부담스런 금리 수준에도 불구하고 강세를 나타냈다. 물론 주가와 금리 상승이란 연초의 대세 인식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금융시장은 기대감을 먹고 사는 곳이다. 현재 경기가 나빠도 미래에 호전될 수 있다면 주식시장은 강세로, 채권시장은 약세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외환시장은 국가 간의 거래라는 성격이 강해 각국의 경제 변수들에 대한 기대를 따라 움직인다.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에서 파생된 2차 시장이지만, 그 특징은 현실이 아니라 기대라는 점에 있고,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분석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불확실성의 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올 초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좋게 보일 때는 모든 게 좋아 보이고 미래에도 그것이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똑같은 상황들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금융시장을 가리지 않는다. 증권시장의 양대 축이라고 할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지난 주말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15일 발표된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이 2조1499억원으로 많은 사람들의 예상치를 밑돌면서 종합지수는 950선을 아래로 떨어졌다. 한때 강세론을 외치던 사람들이 반쯤 백기를 들고, 약세론자가 갑자기 부각되는 등 채권금리나 주가지수, 혹은 환율은 그야말로 누구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전망의 언어’일 뿐이다. 여기에 투자자들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는, 냉정한 시장 인식만이 자리를 잡는다. 미국 경제 악화 가능성, 불확실성 더해 미국 시장의 움직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채권시장에선 우리의 콜 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을 대세로 잡았고, 일각에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가 아닌 0.50%포인트까지 올릴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경제의 악화 가능성이 나오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에 따라 물가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금리 인상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어 주말엔 단기 금리가 급락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경기 둔화 가능성마저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우와 나스닥, S&P500지수 등 주요 주가지수들은 지난 주말 올해 들어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최석원 팀장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게 내부적인 소비 과잉을 억제하기 위해서 상당 정도의 경제적 충격을 감수하려는 의사 결정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 내수에 대한 그린스펀의 부분적 자신감의 표출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종합해 보면, 현재 금융시장에선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가 가시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OECD 경기선행지수의 하락세나 미국 금리 인상이 부추길 글로벌 유동성 약화 등이 결국 기업실적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걱정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국내 경제 역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지만, 수출증가율 하락 등으로 상황을 낙관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는다. 거시경제가 금융시장의 가장 큰 재료라는 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정책 금리라는 변수만 보더라도 워낙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어 의사 결정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경식 아이투신운용 본부장은 금리와 관련해 "한국은행이 두려워하는 일은 미국이 금리를 올려 금융통화위원회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죠. 경기 회복을 확신할 수 없어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미국이 금리를 올려 세계 경제가 둔화되면 역시 금리를 내릴 수도 없죠."라고 지적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금융시장을 자신 있게 관측하기란 힘든 일이다. 문제는 투자자는 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사실. 예컨대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찍을 때 나오는 '이번엔 다르다'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주장을 그냥 웃어넘길지, 과연 주식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서 투자자들은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적립형태의 주식 투자 관행의 정착으로 수요 기반이 탄탄해지고 추후 연기금이 주식투자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으며 조만간 기업연금시장이 도입된다는 점 등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을 긍정적인 변화에 비중을 둔다고 보고 큰 그림의 전략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세계 경제 악화 가능성과, 수출 둔화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다면 보다 보수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금융시장의 복잡한 움직임은 결국 금융시장 본연의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지 모른다. 물론 시장 전망의 본질에 내재한 원초적인 우울증을 딛고 금융시장은 내일이면 아마도 또 다른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장태민/ <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 amigo@moneytoday.co.kr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