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6 00:49
수정 : 2008.05.07 19:45
인천 용현·학익 개발지구 원주민들, ‘지분쪼개기’ 이메일 공개
“외부조합원 구성비율 물어”…도시개발법도 ‘땅분할’ 부추겨
대형 건설회사가 도시개발 사업을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추진하기 위해 우호세력의 이른바 ‘지분 쪼개기’를 유도하거나 묵인하다 제 발등을 찍은 사례가 드러났다. 반대 세력까지 맞불 성격으로 쪼개기에 가세하는 등 극심한 지분 쪼개기 탓에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는 도시개발법의 허점도 숨어있다.
인천 남구 용현·학익 2-1블록 도시개발사업지구의 빌라·주택 원주민연합회(연합회)는 5일 “에스케이(SK)건설이 사업 추진 초기이던 지난해 3월 ‘용현·학익 도시개발조합 추진위원회(추진위)’에 쪼개기를 유도했다”면서 증거로 에스케이건설이 지난해 3월26일과 27일 추진위에 보낸 전자우편 2개를 공개했다.
지난해 3월26일 전자우편에는 당시 에스케이건설 개발영업2팀의 한 과장이 추진위 쪽에 “7가지 사항을 준비해 보고해 달라”면서, 그 중 한 항목으로 ‘동의서의 징구 구성비율 사전전략(실질적 징구 100명, 지분 쪼개기 방법 ?명)’을 요구했다. 연합회 쪽은 “사업 동의서를 받을 원주민 조합원은 100명으로 하되 지분 쪼개기를 통해 들어온 조합원의 수를 얼마로 할지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케이건설은 다음날 전자우편에서는 “주민들에게 추진위를 순수 주민들로 구성된 단체로 인식시킬 것인지, 아니면 에스케이를 배후에 둔 업체로 인식시킬 것인지”를 추진위에 묻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추진위는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183㎡(55평)에 불과한 1필지의 땅(용현동 374-22번지)을 외지인 140여명의 명의로 지분을 쪼개는 등 수백명 명의로 ‘공유지분 분할’(땅 쪼개기)을 했고, 상당수 원주민들은 “추진위가 지분 쪼개기 등 투기 성향을 보이는데도 에스케이건설이 추진위 쪽과 사업을 추진하려한다”며 반발해왔다.
원주민들 역시 이에 맞서 지난해 말부터 0.3㎡에 불과한 땅을 지인 등을 통해 803명이 공유하게 하는 등 지분 쪼개기를 시도했고 처음에는 300여명에 불과하던 조합원이 이제는 2048명에 이르고 있다. 결국 에스케이건설은 지난달 15일 인천 남구청 등에 사업 철회를 밝혔다.
용현·학익 도시개발사업은 에스케이에너지의 옛 저유소 터 39만㎡와 원주민 땅 3만㎡로 구성돼 있다. 에스케이 쪽은 조합원이면서 대지주이다. 하지만 도시개발 사업의 의사 결정은 토지 면적 기준으로 3분의 2 이상을 넘는 조합원 동의는 물론, 토지 면적과 상관 없이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에스케이로서는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걸림돌이었다.
도시개발법도 문제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1필지의 땅은 공유자 수에 상관없이 1명의 조합원에게만 조합원 자격을 주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명시돼 있다.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에서 건물 쪼개기는 가능해도 공유지분 분할(땅 쪼개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시개발법에는 이를 막을 규정이 없어 공유자 모두에게 조합원 자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14일 도시개발법 업무지침 개정을 통해 지분 쪼개기가 극심할 경우 지정권자(기초 지자체)가 사업을 반려할 수도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지만, ‘할 수도 있다’에 불과하다. 지분 쪼개기가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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