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금리정책에도 입장차 확연
경기상황을 진단하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각이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경기하강으로 진입'을 공식화한 데 비해 한은은 `성장세의 둔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환율정책에서도 두 진영간에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통화정책에 대한 요구수준과 대응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엇갈리고 있다. 그에 따라 경기부양을 위한 수단과 처방에서도 현저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 4%중반 성장률, 심각한가 = 11일 관계당국과 한은 등에 따르면 이성태 한은 총재는 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올해 성장률이 4.5% 이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경기하강'이라는 표현대신 `경기 상승세의 둔화'라는 용어를 고수했다. 반면 이 총재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9일 기획재정부는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우리 경제가 경기 정점을 통과해 하강 국면이 진입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경기 안정을 위한 정책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내세운 표현인 `상승세의 둔화'는 성장률 곡선이 완만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위로 향하고 있다는 해석이며 재정부의 진단인 `경기하강'은 정점을 지나 내리막으로 향한다는 의미다. 재정부가 현재의 경기상황을 좀 더 부정적으로 진단하고 있는 셈이다.이 총재가 잠정적으로 언급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4.5% 이하'에 대한 해석도 두 기관간에 다를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임기내 7% 성장을 목표로 한 만큼 올해 성장률이 5% 아래에 머문다는 것은 재정부로서는 수긍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한은은 "세계 경기와 미국 경기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4.5% 이하 수준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특히 올해 1.4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7%에 그친 것을 두고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비관적인 논조로 기사화한 것에 대해 한은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작년 4분기의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1.6%였던데 따른 조정효과를 감안하면 1분기 성장률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성장률을 합치면 2.3% 수준인데, 이러한 패턴이 6개월 되풀이된다면 1년간 성장률이 4.6% 정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성장률 5.0%를 다소 하회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경제가 급강하는 양상으로 성장세가 추락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한은의 주장이다. 그러나 재정부는 소비와 설비투자, 고용 등 모든 지표가 일제히 아래 쪽을 향하고 있고 각 지표들이 나타내는 양상도 심상찮다는 점을 들어 추경을 비롯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 금리인하 무산시킨 네자릿수 환율 = 한은은 5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를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나 소비자물가의 급등세와 원.달러 환율 폭등에 눌려 금리인하 카드를 접었다. 재정부가 여러 채널을 통해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환율을 네자릿수로 끌어 올린 것에 대해 한은은 "환율 급등이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하는 마당에 어떻게 금리를 인하할 수 있겠는가"라며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경상수지 적자를 막기 위해서는 환율상승이 불가피하며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환율하락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그러나 인위적인 환율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추겨 내수경기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한은은 우려를 갖고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 정보기술(IT) 업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낮아진 상황에서 환율상승 효과로 이들 업종의 수출경쟁력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일자리 증대 효과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을 재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한은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네자릿수 환율을 용인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후 시장 참가자들이 그동안 몇차례의 테스트를 통해 1,000원대 환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서 "정부가 보여줄 수 있는 패를 이미 적나라하게 보여줌에 따라 시장참가자들은 수월하게 대응하는 편"이라고 말해 정부의 환율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 서투르기 짝이 없는 금리인하 주문 방식 = 5월 금통위를 앞두고 정부당국자들은 입을 맞춘 듯 금리인하를 강도높게 주문했다. 이미 4월 금통위 직후 이성태 한은 총재가 추후 금리인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마당에 정부 당국자들이 쐐기를 박으려는 듯이 서두른 것이다. 재정부의 강만수 장관뿐만 아니라 최중경 차관까지 나서 `금통위 열석발언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하며 금통위를 은근히 압박했으며 금리문제에 관한 한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전광우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게다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까지도 금리인하를 채근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한은에서는 "이쯤되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지경"이라면서 당국자들의 발언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협조'를 당부하는 정도면 충분히 뜻을 헤아릴 수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금리인하를 요구하다보니 "이런 분위기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금통위가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꼴이 된다"는 분위기가 금통위 주변에 팽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진 정부 쪽에서 환율정책이나 통화정책 등에 서투르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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