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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0 13:40 수정 : 2008.05.20 13:40

삼성전자 구미공장의 납품계약 해지로 공장가동이 중단된 한 휴대전화 부품 조립업체 직원들이 일손을 놓은 채 공장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협력업체, 남품 중단 왜

경북 구미시에 있는 삼성전자의 한 부품 조립업체 사장은 “경영자가 아니라 조립라인의 작업반장 신세”라고 푸념했다. 삼성전자에서 임가공 비용은 물론 각종 경영 관련 사안들을 사실상 ‘통제’받아 온데다, 법정 최저임금 수준인 종업원 임금도 제대로 못 주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 회사를 포함한 구미지역 9개 부품사 사장들은 지난 8~9일 휴대전화를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시켰고, 이 가운데 2곳은 결국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상태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협력사들의 초유의 납품중단 사태로 수백명의 30~50대 여성사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임가공비 줄이고 자재 손실률 떠넘겨
조립업체 사장 “우린 작업반장 신세”
삼성 “수많은 업체 관리 상황 고려해야”

19일 <한겨레>가 입수한 삼성전자와 협력업체가 주고받은 공문들을 보면, 외주 조립업체들은 지난달 25일 삼성전자에 보낸 의견서에서 임가공 임률과 ‘로스율’(제작과정에서 정당한 손실로 인정되는 원부자재의 비율)을 현실화하고 국외공장 개설에 따른 물량 감소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외칠 때 대한민국 최저의 임금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외주업체는 적자에 허덕여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5월10일부터 오더(주문) 수령 거부는 물론 사업장을 가동중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립업체 사장들이 밝히는 최대 애로사항은 ‘로스율’이다. 업체들이 공급받은 자재들을 조립하다 보면 고장나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일정한 비율을 초과하면 삼성전자에 변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 로스율이 지난 4년 동안 0.3%에서 0.15%로 낮아졌고, 2년여 전부터는 엘시디 액정이나 메모리 기판 같은 고가품들은 아예 적용을 안 해줬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임가공 임률로는 주·야간 12시간씩 일하는 생산라인 노동자들에게 한달 110만원 정도밖에 줄 수 없는데다, 최근 삼성전자 쪽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서 하던 작업을 서서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도록 해 노동조건도 매우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 협력업체가 삼성전자에 보낸 공문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나흘 뒤 답신 공문에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및 관리효율 등이 미흡하여 해외 주요 경쟁사의 협력업체들에 비해 현저히 경쟁력이 떨어져 더이상 제조물량을 유지시킬 입장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 “(1분기 경영실적이 좋았던 것은) 주로 해외 생산거점에서 얻은 이익으로, 구미사업장은 오히려 채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번 집단행동에 의한 계약 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삼성전자는 또 “이렇게 집단행동을 함은 협력업체를 빙자해 모기업을 협박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구미에서 만난 조립업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강압적인 협력업체 관리방식 탓에 이번 거래중단 사태가 빚어졌으며, 납품재개 이후에도 업체들을 옥죄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조립업체 사장은 “그동안 임가공 비용을 정할 때마다 협력사 사장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삼성 스스로 정해놓은 숫자에 합의한다는 사인을 받을 뿐 일절 협의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대외비 자료라며 구체적인 단가산정 근거도 보여주지 않고 한 장짜리 합의서 종이에 사인하게 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미지역 휴대전화 부품조립업체 실적추이

업체들은 삼성이 납품중단 이후 4월치 임가공 비용을 지급하면서도 일종의 ‘횡포’를 부렸다고 주장한다. 일단 임가공비용을 삼성전자가 지급하면, 이 중에서 로스비용을 협력사에서 돌려주는 게 일반적인데, 아예 로스비용을 떼고 임가공비용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거래가 재개된 업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 협력업체의 관리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은 “삼성이 로스비용을 한꺼번에 떼어가는 바람에 월급날인 지난 15일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며 “업체들을 길들이기 위해 협력사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임가공비용에서 로스비용이 차감된 것은 납품이 중지된 상황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으며, 임가공 임률의 결정방식에 대해서도 수많은 임가공업체를 거느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거래중단 업체의 퇴직인력 문제는 이들이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다른 협력사들에 우선 채용을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미/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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