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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2 18:52 수정 : 2008.06.02 19:11

경남 진해시의 한 주물업체에서 직원이 전기로에서 녹인 쇳물을 부어내고 있다.

주물업체 ‘단가인상 요구’ 자동차 등 납품중단
플라스틱업계 “대기업 가격결정 불합리” 반발

“지금 우리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도로 양쪽에서 서로 차를 몰고 돌진하다가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처럼, 원자재값 상승분을 누가 떠안을지에 대한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중견 주물업체 ㄱ사 사장)

원자재 가격 폭등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산업계의 갈등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주물업체들은 세 번째 납품중단에 들어갔고, 플라스틱업종 중소기업들은 석유화학 대기업들의 불합리한 가격결정 구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들끼리 거래관계를 갖고 있는 제지·골판지·지함업계 간 갈등은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연합회(주물조합)는 “자동차, 공작기계, 조선 등 부품에 쓰이는 주물제품을 만드는 업체들 중 상당수가 납품중단에 돌입했다”고 2일 밝혔다. 앞서 주물조합은 지난달 31일까지 ㎏당 155~165원을 인상해주지 않으면 업체들이 납품을 지속할 수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주물업체 사장은 “외국계 완성차 및 관련 부품업체들은 납품중단으로 빚어진 손실에 대해 클레임을 걸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며 “부품업체들의 경우 ‘숨만 쉴 수 있는 수준’의 납품단가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사업을 접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는 “회사마다 대책회의를 열고 주물업체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며, 현대·기아차와 추가 반영 여부를 협의 중이지만 즉각적인 단가인상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플라스틱 제조 중소기업들과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제품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은 물론 가격 사전고지 제도의 도입 여부를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비닐봉지를 생산하는 ㄴ사의 이아무개 사장은 “현재는 대기업 영업사원이 5월 원료가격 예상치를 전화로 통보한 뒤, 5월분의 최종 판매가격은 대기업이 6월에 결정하는 방식”이라며 “정확한 가격을 모른 채 물건을 갖다 쓰는 불합리한 가격결정 구조가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관계자는 “구매시점에 가격을 고지하는 가격 사전 예시제를 시행하려고 했으나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질의한 결과 거래관행을 일률적으로 바꾸는 것이 부당공동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개별 거래업체간 자율적으로 시행하자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 법 위반을 피하면서 상생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줬다”며 “공정위 탓에 가격 사전 예시제 도입이 어려워졌다는 건 억지”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및 주물 중소기업들이 쓰는 원자재값 추이
포장산업계인 제지·골판지 업체들과 지함업계의 다툼도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초 ㎏당 70원선이던 고지(폐지) 가격은 현재 190원선까지 올랐으며, 고지를 원료로 한 포장용 골판지 가격도 ㎏당 330원에서 420원까지 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포장용 골판지를 만들어 국내 대기업들에 납품하는 중견 제지·골판지 회사들은 고지업계의 사재기 및 대중국 수출을 문제삼고 있는 반면, 골판지를 구입해 포장상자를 만드는 지함업계는 제지·골판지 회사들이 고지 값을 핑계로 과도한 가격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함 중소기업들은 지난해말 골판지업계가 가격을 담합해 인상시킨다며 공정위에 제소했고, 지난 4월에는 관련업계와 공정위에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연구조정실장은 “원자재 충격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면서 거래관계에 있던 기업들끼리 ‘금도’를 넘어선 충돌이 이어지는 형국”이라며 “합리적인 대화의 채널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단가조정제·가격예시제, 업계 입장차로 ‘표류’

원자재가격 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계는 ‘납품단가 조정제도’와 ‘가격 사전 예시제’의 도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납품단가 조정제도 도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석유화학제품 가격 사전 예시제를 놓고는 관련 업계는 물론 정부부처 간에도 입장차이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납품단가 조정제도는 급격한 원가상승이 있을 경우 납품을 주고받는 기업들끼리 서로 협의하도록 창구를 만들자는 취지다. 원자재가격이 상승한 만큼 정률적으로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연동제’를 요구하던 중소기업계가 애초 주장에서 한발짝 물러선 셈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납품단가 조정제도 도입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납품단가 조정제도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다며 대·중기 상생협의회 개최를 반대해온 전경련이 최근 상생협 안건을 논의하자며 찾아왔다”며 “그러나 전경련은 납품단가 조정제도보다는 공동 기술개발 등을 통한 상생 논의에 집중하자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가격 사전 예시제는 표면상 업계간 합의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지만, 실제 제도 도입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플라스틱업계와 이들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올 초부터 실무회의를 열고 가격 예시제 도입에 합의했지만, 대기업 쪽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괄 시행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쪽은 “가격 예시제 추진 때 양 협회가 명시적인 선언을 하는 등의 특정한 행위들만 피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힌 반면, 지식경제부 쪽은 “공정위의 공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해석이 대·중기 상생협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공정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납품단가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이달 말까지 하도급법 개정 등의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임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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