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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보통신 업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3대 못난이’가 있다. 세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면서도, 유독 한국시장에서는 맥을 못추는 미국의 세 거대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휴대폰의 모토로라, 인터넷의 야후, 그리고 컴퓨터의 델이 그 장본인들이다. 모두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에서 이름값은커녕 업계 순위 3위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최고경영자 방한 ‘독려’ 세계 피시(PC)업계 1위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는 델이 명예회복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델 한국지사는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났다. 올 들어서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전국의 애프터서비스망을 집중적으로 확대해 단 6곳에 불과하던 것이 104곳으로 늘어났다. 25일에는 델의 최고경영자인 케빈 롤린스 회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한국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롤린스 회장은 첫 아시아 방문여행에서 한국을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 델 한국지사는 이날 회장 방한에 맞춰 100만원 이하 노트북을 내놓은지 5개월만에 다시 20만원 가량 값을 내린 79만원대 노트북과 39만원대 데스크톱 피시를 선보이며, 2차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피시업계의 신화, ‘델’의 저가 직판방식=1984년 평범한 의대생 마이클 델이 단돈 1000달러로 시작한 델의 성공비결은 컴퓨터 유통단계에서 중간상인을 없애고 제조업체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한 직거래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골라 델에 주문하면 직접 조립해서 배달까지 해주는 직접 판매 방식(일명 ‘다이렉트 모델’)은 다른 업체들의 고민거리인 재고에 대한 부담이 없고, 중간 마진을 줄여 가격을 40%까지 낮추면서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서 맥못추는 세계1위 ‘명예회복’ 나서
70만원대 노트북 · 30만원대 데스크톱 선봬
AS지점도 100여곳으로 늘려 공략 잰걸음
델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직접 판매 방식을 앞세워 기업 대상 서버시장에도 진출했고, 2000년 피시판매 세계 1위에 오른 뒤 줄곧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라이벌이었던 컴팩이 휼렛패커드에 인수되는 등 주요 업체들이 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델은 한때 성장우선 정책으로 내부 직원대상 설문조사에서 50%가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현 롤린스 회장이 직원들의 자아발전을 중시하고 리더십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성공문화’ 프로그램으로 분위기를 추스르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델은 지난해 매출액 492억달러(49조2000억원), 세계 피시 시장 점유율 17%를 기록했다. ■왜 한국시장에서는 안통하나=델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델이 성공한 핵심 전략인 직판 방식이 한국 시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델 특유의 직판 조립 피시의 가격경쟁력이 한국 피시 도매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용산 전자상가의 값싼 제품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온라인 주문이 많은 미국과 달리 한국 피시 시장은 오프라인 주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또 한국 소비자들은 싼 가격보다는 아직까지 피시의 브랜드를 가장 중요한 구매기준으로 여기고 있고, 돈을 더 주더라도 확실한 애프터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에 삼성과 엘지 등의 고가형 대기업 제품을 유달리 좋아하는 편이다. 업계 “싼값만으론…”애써 느긋 업계에서는 이런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는 델의 직판 방식이 통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엘지 등 주요 업체들도 델의 공세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때문에 최근 델의 적극적인 공세가 시장에서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델이 유럽시장에서 2위, 아시아태평양에서 4위를 하고 있는데 견줘 떠오르는 중요 시장인 한국에서 6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델의 입장에서는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롤린스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며 이 지역에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중요도와 규모면에서 모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한국에서도 델이 다른 지역에서 거둔 성장을 이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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