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6.17 18:48 수정 : 2008.06.18 00:44

엘지전자에서 협력업체인 중소기업 세아메카닉스로 옮긴 윤종경 이사(오른쪽서 두번째)가 김선덕 전무(오른쪽)와 함께 공장라인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엘지전자 윤차장, 협력사 이직 뒤…
엘지쪽, 중견인력이동제·2년간 보수 60% ‘상생지원’
공장 생산라인 바꾸고 포장 개선…물류비 절감시켜

경북 구미에 있는 중소기업 ㈜세아메카닉스의 윤종경(49) 이사는 2년 전까진 대기업 ‘차장님’이었다. 그것도 디지털티브이 벽걸이와 티브이·자동차용 알루미늄 부품을 생산하는 지금 직장의 매출 70~80%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거래업체 엘지전자 소속이었다. ‘갑’ 회사 차장님은 22년 일터를 떠나 왜 ‘을’ 회사로 옮겼을까.

“대기업이 내 인생 끝까지 책임져주지는 않을 거라는 걸 어느 정도 되면 모두 깨닫지 않습니까. 일부러 여러 부서를 지원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비전 있는 중소기업을 찾고 있었어요. 마침 ‘중견인력 이동제’가 있어서 운이 좋았죠.”

중견인력 이동제는 엘지전자가 2005년부터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도입한 상생제도의 하나. 엘지전자 인력이 퇴사해 협력업체로 옮기면 2년간 보수의 60%를 대준다. 세아의 김찬한 사장은 “지방 중소기업은 아무리 돈을 줘도 인재 채용에 한계가 있다. 특히 대기업에서 훈련받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말했다.

직원은 250여명이지만 연구원이 18명인 연구소를 따로 둘 정도로 세아는 이전부터 연구개발에 힘쓰는 중소기업이었다. 여기에 윤 이사가 2006년 8월 혁신팀 부장으로 영입되며, 변화는 본격화됐다.

공장 한쪽에 꽂힌 직원들의 개별 노트는 그 작은 사례다. “핸드카에 평평한 판을 대면 흔들리지 않아요.” “베이스의 쌓기 방법을 바꾸면 비닐백을 제거하는 인력이 줄어듭니다.” 하나같이 라인에 서는 사람들이 아니고선 지적하긴 힘든 사항이다. 조장들은 ‘당장 채택’ ‘OO팀에 검토 넘김’ 등 메모를 해 바로 피드백을 준다. 이런 혁신 제안 건수가 1년에 2천건이 넘는다.

12명의 조장들은 돌아가며 한 달에 두번 ‘원포인트 개선안’도 발표한다. 김선덕 전무는 “처음 발표 땐 오른편에 설지 왼편에 설지도 몰라 당황하던 이들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게 곧 개개인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생산 아이템이 4천여종에 달해 통로도 뒤죽박죽이던 공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에 맞춰 셀과 벨트를 적절하게 혼합한 구조로 바뀌었다. 아침엔 중국어 선생도 불렀다. 낯선 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들은 한 명씩 붙잡고 대화를 했다.

이런 경쟁력은 대기업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세아가 개발한 받침대를 접어 티브이 백커버에 올리는 폴딩스탠드는 포장 크기를 대폭 줄여 엘지전자의 수출 물류비를 크게 절감시켰다.

물론 중견인력 이동제의 시행엔 어려움이 적잖다. 김찬한 사장은 “솔직히 우리도 처음 제시한 몇 명은 흡족하지 않아 거부했다”며 “대기업에 불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우수한 인력을 보내줘야 상생이 된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도 “수많은 대화와 옮기는 사람의 준비 없인 어려운 일”이라며 “중소기업에선 한 가지 전문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건실한 세아지만 요즘은 1999년 창업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다. 디지털티브이의 알루미늄 부품이 값싼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며 엘지전자의 주문량은 뚝 떨어졌다. 1년 전 자동차용 부품에도 뛰어들었지만 ‘돌아서면 치솟는’ 원자재값에 주조 공장인 세아캐스텍의 기계 17대 가운데 절반은 멈춰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은 ‘생존’의 문제다. “1월에 비해서만 알루미늄값이 35% 올랐어요. 대기업이 이를 다 커버해주나요? 조금이라도 효율성을 올려 차이를 줄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요.” 윤 이사는 이제 엘지전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거래업체 직원이다. “보수나 안정성 생각하면 못 옮겨요. 하지만 전 여기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하나 바란다면 기술개발 열심히 하는 중소기업은 정부나 거래기업도 적극 육성해 줬으면 좋겠어요.”

구미/글·사진 김영희 기자

‘구매사이트’ 자동평가시스템
거래업체 선정 투명성 높이기

‘상생협력’이 현실에선 대기업의 생색내기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노무현 정권 때 ‘상생’이 화두가 된 이래 다양한 제도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엘지전자는 중견인력이동제도 이외에도 필드 컨설턴트, 치프 컨설턴트 300명 정도를 선정해 협력업체의 경영컨설팅을 맡게 하는 등 상생협력을 위한 제도를 실험 중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동평가를 통해 신규 거래업체의 잠재적인 풀을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 눈길을 끈다. 물론 직접적인 자금이나 인력 지원도 상생 가운데 중요한 방법이지만, 실력있는 중소기업에겐 거래업체 선정의 ‘투명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엘지전자의 구매사이트(lgesuppliers.com)는 잠재적인 신규 거래업체의 등록을 개별 담당자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신기술·신소재 업체이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구매팀에 통보를 해 기술심사 대상업체가 되게 하고, 아니라면 자동으로 한국신용평가 신용등급을 확인해 기준에 따라 잠재 거래업체 풀에 등록할지 미등록할지 결정하는 식이다.

엘지전자 쪽은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자동평가를 통해 최대한 경쟁력 있는 업체들을 잠재 거래업체로 확보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