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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9 16:31 수정 : 2005.04.29 16:31

EPA

세계 금융시장의 요람, 월스트리트가 요동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증시는 주요 지지선을 하향 돌파하며 급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국제 유가 급등과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형 우량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랠리의 꿈을 키우던 얼마 전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과매도 부담으로 인해 반등 시도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그 향방을 둘러싸고 여전히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본격적으로 1분기 실적 시즌이 시작되면서 예상치 못한 각종 충격 리스크가 점증하는 데다 성장 둔화라는 새로운 복병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증시 환경은 각종 역풍들에 둘러싸여 있다. 지난 2월 중반 연준의 공세적인 긴축 가능성 시사 이후 찬바람이 불던 시장 기류에, GM을 필두로 각종 기업의 악재가 가세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보험사인 AIG나 대형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심지어 ‘가치 투자의 대명사’ 워렌 버핏이 지키고 있는 버크셔헤더웨이 등 주요 금융기관들마저 각종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여기에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된 1분기 기업 실적 시즌에서 IBM 등 대형 기술주의 실적 악화 우려가 나오면서 부담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각종 악재, 성장 둔화 복병으로 요동치는 월가

이 과정에서 최근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 자체마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의 소매 매출 부진에 이어, 여러 경제지표들은 기대 이하의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간 미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던 ‘소비엔진’의 고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는 건 이 때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집중되던 시장의 관심은 이제 다시 경기 둔화, 특히 이른바 ‘소프트 패치’(soft patch: 일시적 소강 국면)의 재연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짧은 유가 반락도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전반의 성장 둔화 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정작 증시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역풍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미국 경제 펀더멘털 자체의 급격한 변화는 없다는 게 많은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실 연준의 거듭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의 기준 금리나 시장 금리는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경제 성장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새로운 경기 침체의 가능성을 환기시키고 있다기보다는 그간의 ‘가속’ 성장세가 ‘감속’ 성장세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데 불과하다. 또한 미국 기업 순익도 여전히 역사적 평균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미국 증시의 요동은 펀더멘털의 반전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시장 심리의 변화나 재조정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투자자들의 리스크 선호도가 급랭하면서, 주식과 같은 고위험 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CSFB의 글로벌 리스크 선호지수는 지난 3월 초만 해도 2000년 증시 버블 붕괴 직전의 최고치까지 올라서기도 했으나, 최근 다시 급반락하며 5개월래 최저치로 내려섰다. 사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비단 미국 증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 전반에 공통된 특징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무엇보다 연준의 태도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이 장기 금리의 이상 저공비행에 대해 “수수께끼”라는 판정을 내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린스펀의 당시 진단은 사실상 국제 금융시장 전반에 만연해 있던 과도한 ‘자기 만족’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간 신용 스프레드 급락과 저조한 변동성 등에 기반한 시장의 ‘확실성 인식’이 급속히 퇴각하고, 그 대신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대한 경계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그 여파는 미국의 장기 금리 급등에서 시작해, 국제 금융시장이 일대 교란 양상을 연출한 데서 입증된다. 최근의 달러화 반등이나 국제 유가 및 상품 가격의 급등락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건 이런 불확실성의 부상으로 인해 투기세력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장 일각에서는 이런 리스크 선호도의 약화에 주목하면서 이제 투기세력들이 물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연준을 필두로 세계 중앙은행들의 초저금리 기조를 기반으로 글로벌 유동성 버블에 편승했던 투기세력들의 준동이 이제는 ‘세계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금리 행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상하면서 막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정작 투기의 ‘밥줄’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불확실성’ 변수가 일종의 시장 테마로 자리 잡으면서 투기세력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의 미국 증시 급락은 투기 준동과 맞물린 국제 금융시장의 교란 움직임이 방향을 재조정한 것일 뿐이다. 그 기폭제는 바로 1분기 기업 실적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이다. 이미 수익 사이클의 고점 통과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 향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 실적의 불확실성이 본격적인 테마로 부상한 것이다. 여기에다 각종 기업들의 악재는 ‘좋은’ 매도의 빌미가 된다. 사실 최근 들어 미국의 기업 및 금융부문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형 금융사고 가능성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핏의 지적처럼 ‘대량 살상무기’에 다름 아닌 각종 파생 상품과 헤지펀드들의 심각한 위험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현재의 모습은 글로벌 유동성 버블이 막바지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투기가 다시 마지막 남은 기력을 쏟아붓고 있는 쪽에 가깝다. 물론 최근의 증시 급락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식 전반의 ‘투매’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술주 등 경기순환주 위주에서 방어주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재조정되고 있을 뿐, 현금이나 채권으로의 대규모 자본 이탈은 나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해, 투기가 퇴각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 주도의 각종 ‘자산 로테이션’과 ‘간시장 포지션 재조정’(intermarket positioning)이 본격화되면서 반대 매매를 통해 시장 교란이 더욱 심화, 확산되고 있을 뿐이다. 증시의 깜짝 반등 시도는 물론, 유가 급반락이나 달러화의 방향성 상실, 나아가 국채 금리의 반락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산경제 한계, 재조정 필요성 부각

이제 사소한 충격에도 시장 민감성이 더욱 증폭되면서 국제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폴 크루그만 등 일부 논자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인플레 리스크와 결부된 성장 둔화 조짐에 주목하면서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환기시키고 있는 건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연준에게는 심오한 정책 딜레마를 뜻하는 것이다. 인플레와 성장 둔화라는 양방향의 위협으로 인해 공세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지도,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이런 파국적인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는 힘들지만, 그만큼 시장, 나아가 경제의 취약성과 민감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간 연준의 ‘야심찬’ 초저금리 정책에 편승해 신용 급증과 주택 버블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미국 경제, 아니 글로벌 경제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자산경제’로 집약되는 새로운 ‘이상 과열’ 경제의 한계와 재조정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스태그플레이션 망령과 결부된 정책 딜레마 그 이상으로, ‘불확실성과 리스크관리’에 치중해 온 ‘매크로 헤지펀드’(Macro hedge fund) 연준의 정책 실패 가능성도 조심스레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요 관전 포인트는 바로 대형 금융사고 가능성이다. 이제 시장은 물론 경제, 나아가 연준의 정책 행보에도 변곡점이 도래한 것은 아닐까? 장보형/ 와이즈인포넷 수석연구원 jangbo@wiseinfonet.com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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