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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19:35 수정 : 2005.05.11 19:35

■ 회고록 펴낸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 인터뷰

여전히 달변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오금역 부근의 10평 남짓한 개인연구소에서 만난 강만수(60) 전 재정경제원 차관은 두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자신의 소신과 주장을 열정적으로 토로했다. 마치 7년 전으로 돌아가 과천 재정경제원 차관실에 마주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잘 나가는 관료도, 여느 고위직 출신 관료들처럼 산하기관에서 ‘제2의 삶’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의 책임이 씌워진 채 1998년 3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 그가 선후배 관료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를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란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펴내고 ‘소신파’ 답게 논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강 전 차관의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국경제의 몰락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수습 과정을 직접 다루었던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97년 11~12월의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진영욱 국제금융과장과 사실상 모든 일을 주도했다. 하지만 12월18일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뒤 주도권이 정덕구 차관보(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와 변양호 과장(현 보고펀드 공동대표)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그는 외환위기 수습의 분수령이었던 뉴욕 외채협상에는 참여하지도 못했다.

뉴욕 외채협상 채권단 요구 수용 성급
임창렬장관 ‘IMF 지원’미리 보고 받아
한국은행 부분 각주 87곳 달아 꼼꼼히


“당연히 뉴욕 외채협상에 참여할 것으로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이헌재 실무기획단장(전 경제부총리)으로부터 ‘임창열 장관이 당신을 보내지 않으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12월 중순부터 서울에서 시작된 외채 만기연장 협상을 주도했던 강 전 차관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정치권력이 재편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씁쓸해 했다.

문제는 뉴욕 외채협상의 결과에 대한 평가다. 강 전 차관은 완곡하지만, 뉴욕 협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외채협상을 해보니 결국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래서 뉴욕 외채협상도 우리가 버티면 해외 채권단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는데도 너무 성급하게 해외 채권기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당시 실무협상 책임자였던 재경원 정덕구 차관보는 협상 시작 8일 만인 98년 1월28일 협상을 끝낸 뒤 “값싸고 양질의 자금을 계속 조달할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강 전 차관은 “당시에도 다른 생각이 있었지만 위기 국면에서 내부적으로 논란을 벌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묻어두었다”고 털어놨다.

또 하나의 쟁점은 97년 11월19일 오후 취임한 임창열 재경원 장관이 국제통화기금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한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는 부분이다. 98년에 있었던 경제환란 재판이나 청문회에서 임 전 장관은 “아이엠에프와 관련해 업무 인수인계를 전혀 받지 못했다”며 사전 인지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강 전 차관은 “당시 재경원의 김아무개 국장이 임 장관에게 이를 분명히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고, “다만 임 장관이 이를 모른 채 하고 일본 자금을 끌어들이려 하는 등 백방으로 뛴 것은 마지막까지 국제통화기금에 가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 충정으로 이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장관의 이런 ‘충정’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불신만 사게 돼 국제통화기금 자금지원에 훨씬 가혹한 조건이 붙게 됐다는 게 강 전 차관의 평가다.

강 전 차관이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또 다른 부분은 이른 바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관한 논란을 정리한 ‘중앙은행론’이다. 강 전 차관은 “그동안 한국은행 독립을 둘러싸고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어 이번에 맘먹고 정리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문제는 워낙 민감한 문제라 한국은행 쪽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온갖 자료를 뒤져 무려 87개의 각주를 달았다. 회고록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논문 같은 형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인터넷 사이트를 수십 차례 드나들었고, 한 줄을 쓰기 위해 온갖 자료를 책상에 늘어놓고 며칠을 숙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 전 차관이 이처럼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한 것은 ‘기록을 남겨 반성하고 배우기 위해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정책결정 과정을 상세히 공개함으로써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무려 6년이란 시간이 들어간 이 책은 그래서 단순한 회고록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또 “외환위기 과정에 대한 시각이나 평가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이 담긴 기록도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정석구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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