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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현대자동차 성장의 발판을 만든 승용차 30만대 생산라인 준공 리셉션에서의 정세영 명예회장(왼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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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장 개척 이끌어 현대자동차의 미국 진출사에 획을 긋는 앨라배마 공장을 준공한 21일(한국시각),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일구었던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세상을 떴다. 현대자동차와 영욕을 같이한 그가 미국 공장 준공 날에 세상을 뜬 것이 공교롭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에 취임한 이후 32년 동안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스스로 “자동차 제조업 자체가 불가능했던 열악한 환경에서 자동차에 인생을 걸고,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로 성장하도록 한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1967년 시멘트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체류하던 중, 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연락을 받고 포드자동차와의 합작을 성사시키면서 자동차 인생을 시작한다. 이듬해 1호차인 ‘코티나’를 생산한데 이어 74년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해 토리노 국제모터쇼에 참가했다. 76년 포니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86년에는 전략차종 엑셀을 개발해 미국 수출을 본격화했다. 첫해 20만대를 팔아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됐다. 87년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회장에 취임한 그는 91년에는 독자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개발했고, 97년 이후 터키공장과 인도공장을 준공해 세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89년 캐나다 부르몽에 연산 10만대 규모의 소나타 생산공장을 세웠으나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부르몽 공장은 93년 가동을 중단했고 96년 5천억원의 손실을 입고 완전 정리됐다. 그는 99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경영권을 정몽구 현 회장에게 넘겨주고 현대자동차와 완전히 결별했다. 회고록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반문하는 바람에 자동차 인생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큰 형님의 속뜻을 진작 헤아리지 못해 송구스러웠다”고도 했다. 슬하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딸 숙영, 유경씨 등 1남2녀를 뒀다. 향년 77. 빈소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이홍동 기자 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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