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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경복고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경제특강을 하기위해 강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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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특강서 약육강식 강조 ‘입길’
“현재 우리 빈부격차 일시적”언급도
“개방시대 경제에 애국심이란 없다. 힘센 자는 계속 잘나가고 힘 약한 자는 죽게 될 뿐이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청운동 경복고등학교에서 고교생을 대상으로 경제특강을 하면서,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론을 적극 옹호하는 내용의 강연을 펼쳐 입길에 오르고 있다. 박 총재는 고교생들에게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설명하면서 최근 경제환경이 개방시대를 맞고 있음을 강조하고, “인건비를 싸게 낮추고 노사관계를 잘 풀어 가급적 우리 기업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국내 기업의 국외 투자든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든 다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방시대엔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최근의 냉혹한 무한경쟁주의를 언급하면서 “예컨대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서면 주변 구멍가게·재래시장·음식점까지 영업이 어려워지지만, 이게 바로 ‘경제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개방경제 시대 속에서 약탈적 외국자본이나 대형 자본의 문제점보다는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사조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청소년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총재는 이어 성장·분배에 대한 생각을 묻는 한 한생의 질문에 “선진국으로 갈수록 빈부격차는 줄어들게 되어 있다”며 “국내에 최근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총재의 이런 강의 내용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로서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계 한 인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균형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을 부각시키며 현실적으로 수용이 불가피한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상조 교수는 “90년대에 선진국인 미국·영국이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소득분배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빈부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 설명은 맞지 않는다”며 “청소년들에게 통화가치 안정과 같은 중앙은행 고유의 역할보다 성장과 경기회복과 같은 정부의 정책목표를 홍보하는 것은 경제부총리가 아닌 ‘중앙은행 총재’로서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박 총재가 개방시대 산업구조 고도화의 필요성과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총재의 이날 강의는 한은이 지난 4월부터 벌여온 ‘청소년 경제강좌’의 하나로, 중앙은행의 수장인 박 총재가 직접 강사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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