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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30 18:40 수정 : 2005.05.30 18:40

명장을 찾아서

김윤배 한화 연화사업팀 계장

지난 2002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숱한 밤하늘의 향연이 있었다. 국화, 하트, 링 그리고 하얀 불꽃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백버들’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불꽃놀이가 월드컵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 뒤엔 김윤배(51)라는 불꽃의 명장이 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 밤하늘을 마음 먹은대로 장식하는 ‘밤하늘의 마술사’다.

㈜한화 연화사업팀 계장. 내세울 것 없는 직함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가 국내 불꽃놀이의 최고봉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그는 78년 입사 이후 27년 동안 한번도 화약을 손에서 놔본 적이 없다. 화약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그의 직업이자 인생이다.

“한국의 불꽃놀이는 세계적 수준입니다.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이 분야의 선진국들이 있지만 2000년 이후엔 오히려 그들을 능가한다고 봐도 됩니다.” 최근 몇년 동안 국내외 이벤트가 많아지면서 한국의 불꽃놀이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설명이다. 대형 이벤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항상 그의 몫이다.


옥피 붙이고 말린 뒤 활약 채우고 꽃 · 링모양 박아넣어

한줌의 화약이 화려한 불꽃으로 형상화돼 사라지는 과정은 철저하게 장인의 손길로 이뤄진다. 모든 것이 하나하나 손길이 가야하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터지면서 불꽃을 만들어내는 연화는 손으로 종이를 겹겹이 덧붙여 옥피(연화의 껍질)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3~4겹 붙인 뒤 2~3일 말리고, 다시 3~4겹 붙인 뒤 2~3일 말리는 과정을 5~6번 반복한다. 옥피를 만드는 데만 20일 가까이 걸리는 것이다.

옥피가 만들어지면, 활약을 채우고 동그란 성(星)을 촘촘하게 박아넣는다. 성은 불꽃의 모양과 색깔을 결정하는 연화의 핵이다. 성에 스트론튬을 섞으면 빨간색, 마그네슘을 섞으면 은백색이 나온다. 불꽃의 모양은 성의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 성을 꽃처럼 배치하면 꽃 모양, 연화 변두리에 배치하면 링 모양의 불꽃이 나온다. 이렇게 성을 배치한 뒤 그 위를 다시 활약으로 덮고 옥피를 씌워 한개의 연화를 완성한다. 이 연화를 연화포에 넣고 40~120m 높이로 쏘아올려 터뜨리면 성이 불타면서 튀어나와 불꽃이 만들어진다.

27년간 화약을 예술로…불꽃마술사
“한국 수준 이탈리아 · 미국보다 앞서”

화려한 불꽃을 위해서는 많은 위험과 힘겨운 작업이 뒤따른다. “월드컵 때는 상암경기장의 천정을 걸어다니면서 발사대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지붕이 투명하다보니 미끌어져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죠. 휴일날 일하는 것도 이력이 났습니다. 남들 놀 때 일하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그의 가치는 상상을 뛰어넘는 밤하늘의 마술이 펼쳐질 때 진짜 빛을 발한다. 성 안에 또 하나의 성을 집어넣어 이중 불꽃을 만들어내는 ‘방전’. 막대 모양의 성을 두 부분으로 나눠 위쪽은 빨리, 아래쪽은 천천히 불타게 해서 불꽃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백버들’. 이런 불꽃들은 그의 손이 닿아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나아가 그는 불꽃놀이를 하나의 종합 예술로 만들어가고 있다. 월드컵 때의 크라운 모양, 원효대교 위에서 불꽃이 폭포를 이뤄 흘러내리는 ‘나이아가라’처럼 수십개, 수백의 불꽃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장대한 불꽃의 향연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몫이다.

불꽃폭포 등으로 월드컵 밤 밝혀 에이펙도 수놓을 채비

그에게도 글자 모양은 힘든 작업이다. 월드컵 때 ‘2002’라는 글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숱한 밤을 새웠다. 꽃이나 링은 방향이 달라져도 큰 상관이 없지만 글자는 다르다. 방향이 달라지면 ‘기억’이 ‘니은’으로 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글자가 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포의 직경을 연화와 정확하게 일치시키고 수백번의 시험발사를 해야 한다. 명장에게도 고민거리는 있다. 값싼 중국산 연화가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한화도 일부 제품은 중국산을 사서 쓴다.

“불꽃 역시 하나의 상품이죠. 최고의 기술로 만든 것들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이렇게 웃으면서 다시 작업장으로 향한다. 그는 지금부터 올 가을 여의도 불꽃축제와 에이펙(APEC)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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