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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31 18:37 수정 : 2005.05.3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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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의 ‘공’에 대한 얘기에 앞서 ‘과’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의 최대의 잘못은 ‘여하한 방법을 써서라도 대우라는 그룹을 살아남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김 회장이 환란 당시 ‘2년 연속 무역흑자 500억달러 추진을 위한 수출드라이브 해법’ 제시와 실천을 통해 국난 극복의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한 사실이나, ‘구조적 부실’을 구실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과거 대우의 계열사들이 눈부신 성장으로 당시 그 결정들이 섣불렀음을 반증하고 있음에도 세상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960년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해외시장 개척의 첨병으로 창업 이래 30여년간 국가 수출의 10%를 담당하며 한국경제의 규모와 활력을 키워냈다. 또한 그는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부동산이나 금융 장사가 아니라 조선 중공업 자동차 전자와 같은 국가기간산업 분야 중흥에 앞장서며 부실기업의 회생과 고용의 증대에 전력해오며 한국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그의 공적은 한국경제의 20년, 30년 뒤를 내다보고 구상했던 세계화 전략이라 할 것이다. 비록 예기치 못한 환란의 압박으로 미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당시 대우가 앞선 예측으로 투자를 집중했던 브릭스 국가들이나 동구권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대우의 자동차를 인수하며 거드름 피우던 업체가 폴란드와 인도공장을 사기위해 열배나 높은 가격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금쯤 김 회장이 추진하고자 했던대로 한국의 국익을 위해 뛰는 600개의 사업망이 세계전역에 갖추어졌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반만년 역사 이래 김 회장 이외에 어느 누가 한국의 브랜드와 저력을 세계에 드넓게 펼치고자 했으며, 수많은 기업인과 젊은이들에게 세계로 향한 가능성과 희망의 너른 날개를 달아주려 했던 이가 있었느냐’하는 점은 ‘지켜서 얻는 것과 버려서 잃는 것’에 대해 보다 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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