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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8 14:40 수정 : 2005.01.28 14:40

일레스트레이션 최수연(무단게재금지)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세상에는 말처럼 쉽게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노인과 신세대 등등. “나중에 꼭 너 닮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 그래야 이 심정 알 거다.”라며 푸념하셨던 부모님, “나이 들어봐라. 세상에서 밀려난 듯한 이 소외감을 젊은 니들이 짐작이나 하겠냐.”는 노인들의 말.

10년 전 내가 다녔던 직장의 CEO도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나에게 “언젠가 회사를 책임지는 입장이 되어 꼭 경영자의 고민을 이해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로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뜻을 대신했다. 흠…, 나 역시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가장 실감하게 되는 자리가 성과평가나 연봉 협상을 위한 면담이 아닐까. 지난 몇 년간 매 분기마다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는 면담, 해마다 연봉을 협상하는 면담을 정기적으로 해왔는데 그 경험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기대사항을 처음부터 서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직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상사 중에 의외로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 맘처럼’ 해주면 좋겠다는, 정말 충족시키기 어려운 바람부터, 성과도 잘 내고 대인관계도 좋고 적당히 지적이고, 순발력도 있고 몸도 아끼지 않기를 바라는, 초점이 없는 주문까지. 그런 상사일수록 직원을 평가하는 데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대가 분명하지 않으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성과평가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목표가 스마트해야 하는 것처럼, 직원이 내야 할 성과도 스마트(SMART)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S(Specific: 구체적인), M(Measurable: 측정 가능한), A(Action-oriented: 실천적인), R(Realistic: 현실적인), T(Timely: 시한이 적절한).


영업부서와 달리 지원부서나 전문부서의 경우는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조직은 측정하는 쪽으로 에너지가 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측정이 가능한 지표를 개발하도록 권유한다. 예를 들어 홍보 인력의 경우 ‘대중매체에 대한 노출 빈도 00번 이상, 열독률을 감안한 독자(시청자)수 0만명 이상, 지난해까지 없던 새로운 방식의 홍보 시도 0회 이상’ 이렇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업인 총무팀의 경우는 비용 절감 목표는 물론이고, 전 직원의 총무부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은 후 그것을 개선하는 것도 포함시켰다. 한 항목을 예로 들면 “문제가 생긴 시설 및 집기가 얼마나 신속하게 복구 개선되는가?”라는 항목에 직원들이 3.4점(5점 만점)을 주었는데 올해 말까지 4.5점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는 식이다.

기대성과가 확립되면 무엇을 평가할지는 매우 분명해진다. 그러나 성과평가 면담의 더 큰 목적은 평가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를 통한 개선인데, 이를 위해 코치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나의 두 번째 교훈이다.

예전에 나는 일대일 성과면담을 하면 그 시간의 80%는 내가 말을 했다. 평소에 느꼈던 문제를 지적해 주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또 동기부여해 주는 것이 상사의 역할이 아니던가. 나는 내 경험과 지식, 지혜를 총동원해서 그야말로 그 직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 분명한 좋은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문제는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하는 이야기가 직원에게는 그렇게까지 흡수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코치가 되어 가장 크게 바꾼 것은 ‘말해주기’보다는 ‘경청하기’에 중점을 두고, 일방적으로 조언하고 충고하는 대신 직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평가 면담에서 정말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직원이 10가지 이상의 성과를 쭉 나열해 작성한 평가서를 보면서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지난 분기에 당신이 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대해 직원은 수동적으로 듣던 자세에서 벗어나 열의를 가지고 설명하고, 어려움을 알려온다. 거기에서 학습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내가 하는 질문은 “다음 분기에는 무엇을 다르게 해보려고 하는가?”, “가장 개선해야 할 일,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다.

질문을 받은 직원은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을 정리하여 말하려고 애쓰며,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헌신할 정서적 토대를 갖게 된다. 이 중요한 변화의 모멘텀을 상사가 가로채선 안 된다.

이렇게 면담을 했더니 예전에는 형식화되었던 성과평가서가 내용이 매우 충실해지고 분량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나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가능성도 분명히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 면담자리에서 그가 집중하여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들어주고 질문해 주는 상사의 코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 고현숙은 한국리더십센터 부사장으로, 기업 CEO와 임원들을 코칭하고 있는 전문 코치이다.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리더십과 코칭을 주된 과제로 기업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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