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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차별 서러워도 잘리지만 않았으면 [3판]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 노사는 홍역 끝에 지난 26일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희망퇴직자에게 주는 혜택은 꽤나 파격적이다. 24개월치 위로금에 자녀학자금, 주식도 준다. 전직 프로그램을 가동해 상당수를 자회사나 관계사에 취업시킨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올해 안에 3800명의 인원을 줄이는 이번 합의를 두고 노사는 ‘윈-윈 게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에선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직원들이 있다. 국민은행 직원 셋 중 한 사람꼴인 비정규직들이다. 이번에 감원되는 인원 중 정규직은 정규직 전체 인원(지난해 9월 말 현재 1만8946명)의 10%(1800명) 정도지만, 비정규직은 전체 8658명 중 23%(2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노사 합의안의 각종 혜택은 정규직 직원들에게만 돌아간다. 비정규직 직원들의 몫은 근무햇수로 산정한 법정 퇴직금이 전부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규직과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일을 해도 은행에서 받는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심한 차별에 아픔을 겪다 나갈 때도 설움을 당하는 것이다. 충남의 한 국민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ㄱ아무개씨는 은행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지방은행의 정규직으로 일하다 은행이 통폐합되면서 직장을 잃은 뒤, 4년 전부터 국민은행 비정규직으로 일해 왔지만 다시 실직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 직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봉급을 받고 있지만, 불평 한마디 안 했습니다. 오히려 1년에 한번씩 재계약하는 처지라 지점장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시간외 업무도 찾아서 할 때가 많아요.” 언제든 은행이 해촉할 수 있는 비정규직들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ㄱ씨도 방카슈랑스, 수익증권, 신용카드 등 한 달에 팔아야 하는 할당 상품만 6종에 이르고, 실적을 채우기 위해 친인척과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은행 다른 지점의 비정규직 ㅇ아무개씨는 “지난해 말 정규직 직원들은 400만~500만원이 넘는 보로금을 받아갔지만, 내가 받은 것은 고작 70만원뿐이었다”며, “그래도 이번에 잘리지 않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한 시중은행에 취직한 ㅇ아무개씨는 처음엔 비정규직이라도 직장 얻는 게 어디냐 싶었지만, 이젠 보통 후회스러운 게 아니다. 지점장은 실적이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며 매일 실적 등수를 발표하고 직원들끼리도 살벌하게 경쟁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고, 지점장 자신만 승진해서 본점으로 들어갔다.
국내 은행들은 몇 해 전부터 대졸 신규채용 인력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으로 뽑고 있다. 2003년 한햇동안 충원된 시중·지방은행 인력 4800명 중 3800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시중·지방은행의 비정규직 직원은 2만7522명으로, 전체 9만5603명의 28.7%에 이른다. 1997년 말에는 이 비율이 11.7%였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은행의 수익성은 외환위기 이후 크게 좋아졌지만, 이는 값싼 비정규직 인력으로 비용을 줄여 지표상으로만 좋아진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금융권 노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를 도입해 비정규직 비율을 점진적으로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은행들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비정규직에 집중해 전환이 아닌 해촉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는 게 현실이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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