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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4 15:57 수정 : 2019.07.24 15:57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지명자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 준비를 하고 있다. REUTERS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지명자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 준비를 하고 있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저돌적이다. 적어도 미국 이익, 아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나름 계산과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밀어붙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통화정책 접근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2019년 7월11일(현지시각) 느닷없이 트위터를 통해 암호화폐를 공격했다. “나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를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강력한 법정화폐인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며, 달러는 단연코 최고의 통화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최고’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 위상이 걱정되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트럼프는 달러 약세를 지지한다. 연방준비제도(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율배반적이다. 한편에서는 달러 패권의 지속을 원하면서 다른 편에서는 그것에 흠집 내는 행위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마침내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낼 것임을 잘 안다고 하겠다. 암호화폐 공격은 이 때문이다. 달러 약세가 자칫 암호화폐 위상 강화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공격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달러 약세 정책은 성공하고 있을까?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달러는 트럼프가 원하는 정도로 혹은 빠른 속도로 약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올 4월 최고 강세를 보인 때와 비교하면 가치가 떨어졌다. 달러 인덱스 기준으로 4월에 98.2로 최고점이던 달러는 7월10일 97.06 수준까지 하락했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2019년 말에 9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는 만족하지 않겠지만 소기의 성과는 거둘 것으로 보인다.

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

달러 약세를 도모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1995년 도입된 달러 강세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면 된다. 시장 흐름이나 판도를 통째로 뒤엎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길이다. 다만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 국제 투자자는 잠재적으로 달러 자산에서 손을 뗄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차입 비용을 극적으로 올린다.

사실, 미국의 달러 약세 정책은 이미 달러 패권에 흠집을 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글로벌 외화 보유 통화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때 65.4%에서 2019년 3월 말 61.8%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 비중은 19.1%에서 20.2%로 높아졌다. 금 가격이 2019년 강세를 보이는 것도 안전자산으로서 달러 지위를 믿지 못하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

달러 패권이 약화하는 현상은 여러 곳에서 목격되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고 있다. 달러 약세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주식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울리지만 매수 분위기가 뜨겁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준이 금리를 내려 달러 약세로 경기부양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투자자는 금리 인하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더 높이 올릴 것이라고 믿는다. 뜨거운 여름, 트럼프와 연준은 산타가 되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뿌리고 있다.

현재 연준 정책금리는 2.25~2.5%다.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제로금리 체제의 영향으로 현재 금리가 높게 보일 수 있다. 트럼프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연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트럼프 논리는 한결같다. 미국은 잘하고 있는데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아 경제가 로켓처럼 상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연준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트럼프가 현재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연준 이사 대부분을 직접 지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연준 행태를 못 미더워한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며 압력을 가한다.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연준을 상대로 한 코멘트를 시간별로 정리해왔다. 이 타임라인을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연준을 본격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이다. 2018년 7월 중순부터 연준 압박이 본격화했다.

당시 연준 반응은 원론적이었다. 통화정책은 대통령의 강한 권고가 아니라 데이터로 결정된다며 중앙은행 독립성을 강조했다. 연준은 2018년 6월14일 기준금리를 2.0%로, 25베이시스포인트(bp) 올린 상태였다. 트럼프가 연준의 긴축 행태에 불만을 표출했지만 연준은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9월27일 다시 25bp 올려 정책금리는 2.25%가 된다. 12월19일에는 2.5%까지 끌어올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연준의 독립성 수호 의지를 믿었다. 하지만 불과 1년이 흐른 지금 누구도 연준 의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2018년 가을, 연준의 긴축은 시장 하락을 불러왔다. 12월 연준이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뒤 절정에 이른다. 트럼프는 노발대발했고, 제롬 파월 의장을 해고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12월 금리 인상이 있은 지 6주 뒤부터 연준은 얼굴을 바꾼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금리가 충분히 높다는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고, 2019년 금리 인상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엷어졌다. 트럼프 대통령 압박과 연준 행보 변화는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시사로 뉴욕 증시 다우지수가 상승세를 보였다. 다우지수는 2019년 7월12일 2만7천 선을 웃돌았다. REUTERS
중단 없는 압박

연준 의장 일정은 공개가 원칙이다. 보통 2개월 뒤에 연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월 일정은 다른 고위 공직자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지루하다. 연준 관리들이나 다른 중앙은행과 하는 회의나 전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정도 다수 있다. 연준이 본격적으로 방향을 바꾸기 직전인 지난 1월, 파월 의장은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과 몇 차례 접촉했다. 백악관 경제고문인 래리 커들로와도 만났다. 2월4일 백악관에서 대통령, 재무장관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중앙은행장이 재무장관이나 대통령을 만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 기간에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했다. 만남 이후부터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다. 바로 트럼프가 원한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거의 확실하다. FOMC는 6월 의사록에서 “경기 불투명성이 계속되면 금융 완화가 조만간 정당화된다”고 명시했다. 파월 의장도 최근 하원에 출석해 “금리 인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장의 경기 확장 국면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만족하지 못하고 금리 인하를 압박한다. 여기에 연준이 동조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연준이 트럼프에게 굴복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트럼프와 연준이 금리를 내리려는 명분은 경기부양이다. 차입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해 경기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확장 국면이 지속되는 경제를 어떻게 부양시키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명분은 그렇다. 하지만 속내는 누가 뭐라 해도 자산시장 부양에 있다. 금리를 낮춘다고 과거와 같이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고 믿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이유는 명료하다. 완화적 통화정책은 ‘쉬운 돈’이 일반화한 상황에서는 작동을 멈춘다. 금리를 내리면 차입이 촉진돼야 한다. 하지만 잠재적 차입자가 금리가 낮은 상황이 영구히 지속될 거라 믿는다면 차입을 주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저금리가 지속되고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징후가 없다면 차입 수요는 줄어든다. 이로써 통화정책이 의도했던 목표는 물 건너간다.

선택의 대가

현재 FOMC 위원들은 정상 금리를 2.5%라고 생각한다. ‘매파’ 위원들이 생각하는 정상 금리도 3.3% 정도에 불과하다. 이 상황이라면 저금리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여지가 크다. 연준이 금리를 현재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올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경제를 자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트럼프와 연준은 원하는 바를 얻을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더 올라가고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이 선택 대가는 지극히 부정적일 것이다. 미국을 장기적으로 위험한 국면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다가올 침체와 둔화를 막아낼 수는 없다. 그 정도를 약화할 수도 없다. 우린 미국이 일본을 닮아가는 걸 목격하고 있다. 정부 입김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독립적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못하는 중앙은행, 그 결과 경제 활력이 떨어져 좀처럼 소생하지 못하는 일본. 미국은 그런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이는 최종적으로 미국의 가장 강력한 힘인 달러 패권 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은 남보다 우월해 언제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승리주의’는 여전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그런 승리주의를 기초로 일본의 부동산 거품을 따라했던 결과였다는 것을 미국은 벌써 잊었다. 이번에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언제는 준엄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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