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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9 08:59 수정 : 2019.08.09 09:41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붕괴> 애덤 투즈 지음/우진화 옮김/아카넷 펴냄

<붕괴>는 출간 즉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눈 밝은 이들의 혜안에 힘입은 일이지만 아마 ‘위기’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각인된 ‘아이엠에프’(IMF) 경험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IMF 외환위기로부터 20년, 미국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10년, 한국은 위기에서 벗어났을까. 지은이 애덤 투즈는 두 번째 찾아온 위기에도 한국은 가장 큰 위험에 있었고 여전히 위기는 상존한다고 진단한다. 두 위기는 전세계 금융시스템과 긴밀하게 엮인 상황에서 비롯한다. 하나의 국가나 체제 틀로는 읽어낼 수 없는 위기이며, 경제(금융)에 국한한 분석으로는 위기의 전모를 밝히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은 2008년 금융위기 메커니즘에 관해 탁월한 설명을 제공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역사상 최악 위기’는 ‘북대서양 은행시스템’(North Atlantic Banking System) 위기였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와 시티오브런던의 연결고리가 빚어낸 시스템 위기였다. 책은 미국 은행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지원이 대부분 유럽 은행으로 흘러 들어간 것을 구체적인 통계 자료와 수많은 공식 문서를 통해 보여준다.

<붕괴>는 위기 진앙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신흥시장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 규모로 확산하는 금융위기의 진행 상황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한편, 위기 대응 과정과 방법을 꼼꼼하게 진단함으로써 세계의 경제와 정치가 긴밀하게 얽힌 오늘의 세계를 분명히 알려준다. 또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위기, 브렉시트 국민투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당선에 이르기까지 최근 10년의 세계사적 사건을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유려하게 풀어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한 세계경제가 크게 안정된 시기(대안정기)는 결국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정치적 위기로 변모했다.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분위기를 공통분모로 하는 극우정파가 세를 불렸고, 프랑스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온건좌파가 몰락했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정치 변화의 배경에는 은행과 채권자에 유리한 구제금융 방식이 추진되고 위기 대응 실패가 누적되면서 재정긴축에 따른 복지 프로그램 축소 등으로 삶의 고통이 가중된 대중이 있었다.

물론 금융위기 10년에 대한 날 선 진단과 방대한 분석이 쉽게 현 상황의 해결책으로 우리를 쉽게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편집에만 반년을 꼬박 쏟아부은 편집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만 방대한 분량에 주눅 들어 쉽사리 책을 집어 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초의 독자로서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하는 일은 가능하리라.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라.’ 유로존 위기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건넨 말이다. 유럽연합 차원의 위기 대응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에 맞서는 미국과 유럽의 대응은 확연히 달랐다. 위기를 유예하는 것(만기 연장이 곧 경기회복 전략)으로 대처하던 유럽연합 모습을 역사상 유례없는 양적완화를 진행하며 적극 대처에 나선 미국 대응과 비교하면서 읽는 것은 위기 변곡점에서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가늠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러시아와 중국을 재발견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2008년 원유 가격 하락에 따른 경제위기를 신흥재벌 집단인 올리가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고 루블화 폭락을 막아내는 장면이나, 2008년 말 급속도로 악화하는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공공지출로 진화에 나서는 중국의 대처는 왜 이들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인지 실감하게 한다. 책은 지정학적 틀 안에서 이들 국가가 폴란드 문제나 우크라이나 위기, 일대일로 기점인 그리스 문제 등과 관련 있는지 설명하는데 여기서도 얽히고설킨 글로벌 금융 문제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저물던 세계 무대에서 미국 주도권이 부활하는 상황에 주목하는 일도 가능하다. 자국 위기를 진화하는 과정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어떻게 초법적으로 일어나고 어떻게 유럽 대중에게 전가됐는지, 미국 오대호 연안 제조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에 부활의 주문을 내걸며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민주·공화 양당 간 정책 대결을 살피려면 눈과 손이 분주해질 것이다.

단연코 <붕괴>는 역작이며 투즈는 거인이다. 그 어깨에 올라서 내려다본 지난 10년의 역사는 현재로 향한다. 우리가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살피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박수용 아카넷 편집자 acanet02@aca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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